SK그룹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40조원은 배터리(Battery), 바이오(Bio), 반도체(Chip), 그린(Green) 등 4대 핵심 성장 사업을 강화하는데 집중됐다. 미국의 첨단 기술력과 인프라를 활용하는 한편, 한미 경제동맹과 글로벌 기업으로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BBCG' 색채 강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6일 오후(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영상면담에서 220억달러(약 29조원) 규모 대미 신규 투자 계획을 밝혔다.
신규 투자는 'BBCG'에 집중됐다. 150억달러를 반도체 연구개발(R&D)과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 시설 설립 등에 투자한다. 반도체 R&D는 현지 대학교를 선정해 협력한다. 차세대 반도체 사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패키징 투자는 SK하이닉스가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회로 미세화 어려움으로 반도체 성능을 끌어올리는데 후공정 기술이 부상한 결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가 전략적으로 밀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을 높이는 시너지도 기대된다. SK그룹은 설비 구축을 위해 현지 기업과 협업, 투자 등을 다각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바이오와 그린에너지 분야에 각각 20억달러, 50억달러를 투자한다.
이로써 SK그룹의 대미 투자 규모는 전기차배터리 분야 70억달러 투자를 더해 300억달러(약 40조원)까지 확대됐다. 단일 국가 투자로는 최대 규모다. 앞서 지난 5월 SK그룹은 향후 5년간 247조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를 감안하면 대미 투자액은 중장기 투자금의 20%에 육박하는 셈이다.
SK그룹은 BBCG 중심 색채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SK그룹의 향후 투자금의 약 90%는 BBCG로 집중돼 있다. 최태원 회장이 '첨단소재' '디지털' '친환경' '바이오' 기업으로 도약을 주문한 데 맞춰 전사는 이를 핵심 성장 동력으로 전략 육성하고 있다. 투자전문 지주사인 SK㈜와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 SK스퀘어, SK이노베이션, SK에코플랜트, SK바이오팜 및 자회사, 관계사 SK디스커버리 등은 잇달아 BBCG 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번 대미 추가 투자액에는 미래 계획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투자가 일부 포함돼 있을 수 있다는 것이 SK그룹 측 설명이다.
'현재진행형' 대미 투자는 여러 개다. 지난 1월 SK㈜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통합법인 SK팜테코를 통해 미국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CDMO인 CBM에 3억5000만달러(약 4200억원)를 투자했다. 또 SK온은 조지아주에 위치한 11.7GWh 규모 배터리 2공장을 내년 중 상업 가동한다. 포드와는 합작법인 블루오벌SK 세우고, 테네시와 켄터키주에서 총 129GWh 규모 생산공장을 2025~2026년에 가동한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테라파워에 지분 투자하고 협력을 확대한다. SK E&S는 세계 최초 청록수소를 상업화한 미국 모놀리스에 약 330억원을 투자한다.
◇대미 투자 확대 왜
SK그룹이 대미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기업 친화 정책과 더불어 수많은 첨단 하이테크 기업 및 우수 인프라를 갖췄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 SK그룹은 최근 실리콘 밸리에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하는 'SK 글로벌 포럼'을 개최하는 등 미국을 글로벌 트렌드 및 미래 성장동력 발굴 거점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경우에는 지난해에만 총 네 차례 미국을 방문했다.
SK그룹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 강화도 염두에 둔 것으로 관측된다. 대표적인 것이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솔리다임)를 인수, 반도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이번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데도 솔리다임 역할이 컸다. 여기에 미국 우수 대학교와 반도체 R&D에 협력한다면 기술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실리콘밸리에 반도체 R&D센터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반도체 R&D 투자의 경우 단순히 현지 일자리 창출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SK하이닉스 기술력을 높여 결국에는 메모리 등 한국 반도체 산업의 본질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은 한미 경제동맹 강화라는 상징성까지 더할 수 있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영상면담에서 연신 “땡큐”를 외치며 기록적 투자에 감사 인사를 거듭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SK그룹의 일자리 창출 기여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일자리 창출 규모는 2만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SK그룹은 미국과 첨단 산업 협력을 지속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유정준 SK 북미대외협력 총괄 부회장은 현지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지속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미국통인 유 부회장을 전략적으로 미국에 보내 한미 교류를 강화하고 현지 투자 전반을 컨트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SK그룹 관계자는 “이번 대미 대규모 투자로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현지 진출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성공적인 양국 윈-윈 경제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한편, 국내 투자도 흔들림 없이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류태웅기자 bigheroryu@etnews.com,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