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체제로 접어든 삼성은 어느 때보다 혁신의 속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모바일, 가전 등 그동안 1위를 자처하던 영역이 후발주자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현재진행 중인 사법 리스크를 뛰어 넘는 오너 리더십 강화를 위해서라도 사업·조직의 혁신 강도는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멈춰있던 삼성의 혁신 시계추는 외부적으로는 초격차 유지와 국익 기여,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리더십 제시라는 미션에 따라 분주히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뉴 삼성', 반도체에 성패 달려
이 회장이 강조하는 '뉴 삼성' 핵심 기반은 반도체 부문 역량 강화로 꼽힌다. 삼성의 핵심 사업이자 성장 발판이었던 반도체는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반도체까지 '절대 우위'를 차지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 회장은 2019년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메모리 성공 DNA'를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분야까지 이식, 진정한 '반도체 초격차'를 달성하자고 선언했다. 이후 지난해 8월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24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발전 로드맵을 공유했다. 14나노 이하 D램 등 메모리 초격차를 유지하되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는 신구조 개발로 3나노 이하 조기 양산을 통한 글로벌 1위 도약 의지를 내비쳤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복권 후 첫 행보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반도체 연구개발(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할 정도로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쟁 업체의 위협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패권을 둘러싼 대외 변수,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 인수합병(M&A)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행보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나는 등 실적 악화에 대응하는 사업 전반 변화도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발판이 반도체인 만큼 취임 후 가장 관심을 갖고 혁신 전략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국 반도체 투자를 포함해 칩4 등 대외 변수 대응, 파운드리 경쟁력 확보 등 회장 리더십을 우선적으로 보여줘야 할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미래사업 준비, 혁신 속도 높인다
이 회장은 '뉴 삼성'을 앞당길 혁신 동력으로 차세대 통신과 바이오 등을 낙점, 대규모 투자를 이어나간다. 실제 이 회장은 5세대(5G) 통신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전담조직 구성과 R&D·마케팅까지 직접 챙겨 왔다. 2020년 버라이즌과 7조9000억원 규모 5G 핵심 장비 공급 계약, 2011년 NTT도코모와 통신 장비 계약 모두 이 회장이 직접 최고경영자(CEO)와 담판을 통해 따낸 성과였다. 지난해 11월 미국 출장길에서도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를 만나 향후 협업을 모색하는 등 5G를 넘어 6G 등 차세대 통신 사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현장 경영도 마다하지 않았다.
바이오 역시 '제2 반도체 신화'를 꿈꿀 미래 산업으로 낙점했다. 이 회장은 지난 1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에 직접 참여할 만큼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삼성은 지난해 8월 24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 5, 6공장 신설과 세포·유전자치료제 위탁개발생산(CDMO) 영역 진출 등 공격적 투자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공언했다. 단순히 바이오 사업 확대를 넘어 전문 인력 양성과 원부자재 국산화, 중소 바이오텍 기술 지원 등 생태계 조성 계획까지 밝혔다. 이 회장은 사업 개시 10년 만에 글로벌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 설비를 갖춘 만큼 반도체 양산 노하우를 바이오에 이식, 새 먹거리로 집중 육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4차 산업혁명 대표 기술에 대한 투자도 과감히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규 시장 창출은 물론 반도체, 가전, TV, 모바일 등 핵심 사업 경쟁력을 한층 높여줄 요소 기술로 평가되는 만큼 삼성이 꾸준히 관심을 이어온 영역이다.
우선 글로벌 거점에 포진한 글로벌AI센터 역량을 강화해 선행기술을 확보하고, 고성능 AI 알고리즘을 적용한 지능형 기기 개발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달 영국 출장길에서도 현지 글로벌AI센터를 방문, 현장을 둘러보고 직원을 격려한 바 있다. 꾸준히 선행연구를 진행했던 로봇사업도 이 회장 취임 후 사업화에 속도를 가해 '로봇 일상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 '사업보국' 실현 앞장
이 회장은 지난해 가석방, 올해 복권과 27일 회장 취임 소감에서도 “국민에게 사랑 받고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국민에게 실망을 준 점, 복권을 통해 기회를 얻은 점을 고려한 발언이다.
실제 삼성은 이 회장의 가석방 직후인 지난해 8월 3년간 4만명의 직접 투자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3년간 대규모 설비 투자를 통해 56만명의 고용 유발까지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삼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삼성은 이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로 경영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사회적책임(CSR) 활동에 가장 집중해 왔다. 기업 이미지 제고와 함께 국가 경제에 삼성의 역할론을 내세운 것이다.
이 회장 취임 후 시민단체를 포함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 해소와 정부가 기대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청년 고용과 벤처 투자 등을 지속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국가적 염원인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지원과 미중 산업 갈등 등에서도 선제적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