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LG는 최근 대대적인 국내 투자 계획을 앞두고 복합 위기 속 공격적인 행보를 예고했다. 기술과 인재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 위기 대응을 위한 무기를 확보하고, 기술 변곡점에 선 주력 사업 분야에서 초격차를 이루겠다는 총수의 경영 판단에서다. 강력한 총수 리더십을 바탕으로 해법을 모색 중이지만 이를 둘러싼 리스크도 남아 있다.
지난 15일 삼성전자는 경기도 용인에 300조원을 투입, 2042년까지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를 포함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메모리 초격차는 물론 파운드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여기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등 삼성 계열사의 지방 사업장을 중심으로 10년간 60조원이 넘는 투자 계획도 공개했다.
LG도 삼성과 같은 날 차세대 기술 분야에 54조원의 투자 계획을 내놨다. 2026년까지 배터리, 전기차 부품,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에 44조원을 투입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바이오, 클린테크 등에 10조원을 투자, 미래 시장을 창출하고 기술 선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실적 부진 속 대규모 투자는 총수 의지가 강력하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두 그룹을 지탱해 온 핵심 사업이 글로벌 기업의 강력한 추격에 부딪히면서 초격차를 위한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 회장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술'과 '사람'에 대한 투자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속적인 투자를 주문해왔다.
두 그룹 총수에게 올해는 중요한 해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회장으로 승진하며 공식적인 총수 직위에 올랐다. 복합 위기 속에서 선대 회장을 넘어선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구 회장도 올해 취임 5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활발한 대외 활동을 자제하는 대신 스마트폰, 태양광 등 적자 사업을 과감히 청산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등 실용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 회장 취임 후 이렇다 할 대외 위기가 없었던 만큼 올해는 복합 위기 극복 해법 등 실질적인 경영 평가 무대가 될 전망이다.
다만 두 총수가 맞닥뜨린 변수는 경영 부담을 가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부당 합병, 승계 의혹 등으로 3년째 재판 중이다. 90번이 넘는 공판기일 동안 매주 한두 차례씩 재판에 참석, 경영 보폭을 넓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 회장은 최근 소송 리스크에 직면했다. 어머니 김영식 여사를 포함해 여동생 2명이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구 회장으로서는 76년간 이어온 LG의 '인화 정신'을 지키면서 경기침체 위기를 벗어나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안았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