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그룹 총수들이 윤석열 대통령 미국 국빈방문 동행을 위해 23일을 전후로 출국길에 올랐다. 최근 글로벌 경제불황 속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압박까지 커가는 상황에서 한미동맹 기반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 과제다.
24~30일 5박 7일로 예정된 윤 대통령 방미 일정에 함께하는 경제사절단은 총 122곳이다. 5대 그룹 총수와 6개 경제단체장이 모두 동행하는 것은 2003년 이후 20년 만이다. 경제사절단의 비즈니스 협력 테마는 반도체, 항공우주, 에너지, 바이오, 로봇 등 첨단산업으로 잡혀있다. 이 가운데 반도체지원법(칩스법), 인플레이선 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기조에 대응해 우리 경제계가 어떤 해법을 마련할지가 핵심 사안이다.
당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반도체 혹한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시장 활로를 위한 반도체지원법 투자 보조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건은 녹록지 않다. 예상보다 많은 이익을 내면 보조금의 최대 75%에 달하는 금액을 미국 정부와 공유하는 '초과이익 공유'를 따라야 하고 사업의 예상 현금 흐름과 수익률, 주요 생산 제품과 생산량 등 사실상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제출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22조5000억원)를 투입해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 등에 150억달러(약 19조9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 회장과 최 회장이 방미 기간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 만나 반도체 분야 초과이익 공유와 정보제출 범위에 대해 조정 협상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구광모 LG 회장은 IRA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 회장은 미국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현대차·기아의 전기차가 현지 보조금에서 제외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발등의 불이다. 최근 미국 정부가 최종 발표한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 16종에는 현대차·기아 모델이 모두 제외됐다. 업계는 테슬라를 제외한 모든 북미산 전기차에 국내 배터리 3사의 배터리가 공급되는 것을 활용해 한국 업체에 대한 세부규정 적용을 유연화하는 방향을 기대하고 있다.
구 회장은 방미 일정에 앞서 LG화학 양극재 공장을 찾아 글로벌 공급망을 점검하는 등 배터리 분야 IRA 규제 대응책 마련을 시사했다. 양극재는 미국 IRA 주요 규제품목 중 하나로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올해 기준 40% 이상 조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IRA 보조금 규정이 공급망에서 중국 비중을 낮추는 것에 초점을 맞춘 만큼 구 회장은 양극재 생산 과정에 있어 이 부분을 강조하면서 중국 의존도를 줄일 때까지 시간을 확보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신성장동력으로 점찍은 바이오 분야 성과를 도모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 18일 뉴욕 시러큐스에 위치한 바이오 의약품 공장 현판식을 개최하고 본격 가동했다. 앞으로 현지 공장에 4800만달러(약 630억원) 규모 추가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다. 경제 사절단 일정에 포함된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미국 제약사 모더나, 바이오젠 최고경영자(CEO)와 만남도 갖는다.
미국 내 케미컬 사업 투자를 확대할지도 관심사다. 롯데케미칼 주력인 수소·배터리 소재 사업은 미국 IRA 시행에 따른 수혜 산업으로 꼽힌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월 글로벌 암모니아 최대 생산 기업인 미국 CF인더스트리스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