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금융위기 후 처음으로 반도체 사업에서 적자를 냈다. 세계 1위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가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쌓인 탓이다. 업황 악화에 삼성은 이달 초 감산을 공식화했다. 당초 알려진 것보다 감산 강도가 더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4년 만에 반도체 적자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6402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95.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27일 공시했다.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대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9년 1분기(5900억원) 이후 처음이다.
실적 감소는 반도체 때문이다. 글로벌 메모리 업황 악화로 삼성은 반도체 부문에서만 4조6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분기 적자를 기록한 것은 2008년 4분기(-6900억원), 2009년 1분기(-7100억원) 연속 적자 낸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금융위기 이후 첫 반도체 적자라는 얘기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며 수요가 부진하고 재고가 늘며, 가격이 하락하는 등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악화해 삼성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감산 나선 삼성 규모 더 커진 듯…'20~30% 출하 축소'
삼성은 이날 반도체 감산을 분명히 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DS부문 부사장은 “생산량을 하향 조정 중에 있다”며 “이에 따른 2분기부터 당사 재고 수준은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반도체 불황에 맞춰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감산을 시작했을 때도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이달 초 잠정실적 발표 때 감산을 공식 언급하며 기조를 바꿨다.
삼성은 이날 감산을 다시 확인하면서도 강도가 높아질 것을 시사했다.
김 부사장은 “레거시 제품 위주의 생산 조정에 더해 1분기부터 라인 재배치 등을 추가하며 감산 규모가 훨씬 더 의미 있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라인 재정비 등을 통해 출하량을 조정하는 '기술적 감산'과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는 '인위적 감산'을 통해 평균 메모리 출하를 20% 정도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삼성은 여기에 더해 중국 시안 낸드 플래시 출하를 더 조정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시안 낸드의 경우 30%까지 감산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은 다만 선단공정 제품은 감산하지 않고, 범용(레거시) 제품 위주로 생산량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D램의 경우 DDR4를 중심으로, 낸드는 128단 미만 제품 감산이 예상된다.
김 부사장은 “특정 제품은 앞으로 고객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했기 때문에 생산량 하향 조정을 결정했다”며 “라인 최적화 등으로 감산 규모는 훨씬 의미 있게 진행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첨단 시장 놓치지 않는다” 투자는 유지
삼성은 시황 악화에도 올해 작년과 유사한 규모 투자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사이클이 돌아오는 미래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삼성은 1분기 시설투자로 10조7000억원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작년 동기보다 36% 증가한 역대 1분기 기준 최대 금액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은 대규모 팹 투자를 항시 필요로 하고 투자 개시 이후 팹 양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 중장기 관점에서 투자를 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선제 투자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초격차를 유지하고 파운드리 사업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DDR5·LPDDR5x 등 D램 첨단공정 수요에 대응하고 낸드에서는 모바일 QLC 시장 창출과 V7·V8 등 첨단공정 비중을 확대할 방침이다.
또 파운드리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적용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 '멀티 브릿지 채널(MBC)' 팹을 통한 기술 리더십과 경쟁력 격차 확대에 주력한다.
삼성은 3나노 2세대 공정 테스트 칩을 제조하는 고객사를 이미 확보했다면서 안정적 개발을 토대로 신규 고객 수주를 확대하겠다고 전했다. 현재 개발 중인 2나노는 2025년 양산이 목표다.
이 밖에 엑시노스 AP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재진입과 자동차 대상 판매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종진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