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관련 장비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올 1분기 세계 반도체 장비 매출이 20%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황 악화에 따른 설비 투자 축소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반도체 후방산업계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시장조사기관 욜인텔리전스는 올해 1분기 전 세계에서 팔린 반도체 장비가 200억달러인 것으로 추산했다. 전 분기 대비 26% 줄어든 것으로, 지난해 4분기(-1%)보다 매출 하락폭이 더 커졌다. 욜인텔리전스는 올해 전체 반도체 장비 매출이 전년 대비 13% 감소한 870억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1분기 실적은 하락세를 보였다. 세계 최대 장비사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는 전 분기 대비 약 1000만달러 줄어든 67억3900만달러를 거두었다. 램리서치와 KLA는 각각 27%, 18% 분기 매출 감소세를 기록했다. 오는 11일 실적을 발표하는 TEL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ASML만 유일하게 매출이 늘었다.(전 분기 대비 5%) 이는 ASML 장비 수요가 회사 생산 능력을 초과한 상황인 때문으로 분석됐다. 유일한 독점적 장비다 보니 주문이 밀려 매출 증가로 나타났다.
장비 업체들의 실적 악화는 주요 반도체 제조사가 투자 계획을 전폭 수정한 탓이 크다. 특히 메모리 시장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투자 규모를 50% 줄이기로 했다. 마이크론도 10% 인력 감축 등 투자 축소를 이어 가고 있다. 제조사의 투자 축소는 장비 업계에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욜인텔리전스는 “D램과 낸드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가 설비 투자를 줄이고 주문을 취소하거나 지연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TSMC는 투자 규모 유지 기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장비 신규 구매에는 보수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견제로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수출길이 막힌 것도 장비 업계엔 악재로 작용됐다.
향후 시계는 더 불투명하다. 반도체 제조사는 막대한 반도체 재고 상황이 조정될 때까지 투자 축소와 감산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전방산업 위축으로 반도체 재고 소진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당장 투자 전략을 선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장비사들은 2분기 매출 전망치를 일제히 낮췄다. 적게는 4%에서 많게는 20% 가까이 2분기 매출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1분기 매출 감소를 피하던 ASML도 2분기에는 1억~2억유로 안팎 줄어든 매출을 전망했다. ASML은 지난달 19일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수년간 침체기가 없던 반도체 시장이 공급 과잉을 겪고 있다”면서 “이번 침체는 전형적인 반도체 침체보다 더 오래 갈 것”이라고 밝혔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