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부가 중국 내 반도체 장비 도입을 위한 별도 기준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국내 반도체 업계는 최소한 중국 기업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중국 업체가 만드는 반도체 기술 수준 이상의 장비 반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는데 실현 여부가 주목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대(對) 중국 기술 통제를 유지하면 현지 한국 기업이 첨단 반도체 장비를 도입할 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 정부와 협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 첨단 장비의 중국 수출 규제) 유예 기간이 종료되는 10월 이후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이 가동되지 못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며 “반도체 장비 반입이나 현재 공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미국 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했다. 구체적으로 △16나노미터 이하 시스템 반도체(로직) 칩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등을 제조할 수 있는 장비가 대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생산 거점을 둔 우리 기업은 1년 유예를 받았다. 오는 9월 말이면 유예가 종료돼 이를 연장하거나 규제 완화가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해법을 찾지 못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조원을 들인 중국 반도체 공장이 큰 피해를 입는다.
국내 반도체 제조사는 우리 정부와 미국 측에 최소 중국 반도체 기업만큼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꾸준히 요청해왔다. 일례로 중국 메모리 업체인 YMTC가 200단 이상 낸드플래시를 만들면 한국 기업도 200단 이상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장비를 중국 내 반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중국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비 수출을 규제하면 중국 공장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고, 중국 내에서 제대로 경쟁도 못 해 결과적으로 한국이 피해 입고 중국 기업만 성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반도체 기술이 상당 수준까지 올라왔다. 메모리의 경우 17나노대급 D램과 192단 낸드를 양산하고 있다. D램은 한국보다 뒤쳐져 있지만 낸드는 거의 대등한 수준이다.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중국은 14나노 이하 공정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내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이를 상회할 기술 업그레이드가 절실한 상황이다.
한미가 장비 반입 별도 기준을 마련하면 그동안 업계가 요구한 내용들이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장비 수출 규제 유예가 연장되지 않더라도 중국 현지 공장을 첨단 공정으로 전환하기 수월해진다.
미국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반도체 동맹으로서의 필요성 때문에 별도 기준 마련을 논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변화를 줄 경우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혼란을 불러올 수 있고, 한국 반도체 업체에 직접적인 피해가 가면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대중국 반도체 규제나 미국 내 반도체 인프라 구축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기업에만 별도 기준을 적용하는 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중국에 진출한 TSMC 등 다른 기업에도 예외 조치가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미 대통령 방미 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업계 우려를 미국 측에 전달했고 미국도 우리 기업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며 “양국 간 별도 기준 마련이나 유예 연장 등 다양한 방식에 대해 논의 중이며,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박종진 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