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간의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뉴 삼성’ 비전 실현을 위한 전략 수립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출장 기간 동안 반도체, 인공지능(AI), 미래자동차, 바이오 등 삼성의 미래와 맞닿아 있는 분야의 글로벌 ‘빅 샷’과 잇따라 회동했다. 이를 토대로 미래 대응을 위한 본격적인 혁신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 12일 새벽 미국 출장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201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이래 가장 긴 22일간의 해외 출장이었다.
이 회장은 출장 기간 동안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팀 쿡 애플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 글로벌 IT 공룡 수장과 연이어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호아킨 두아토 존슨앤존슨 CEO, 지오반니 카포리오 BMS CEO, 누바 아페얀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CEO, 리스토퍼 비에바허 바이오젠 CEO, 케빈 알리 오가논 CEO 등 바이오 분야 대표들과도 연달아 만나며 미래 사업을 논의했다. 미국 동부 바이오 클러스터부터 서부 실리콘밸리 ICT 클러스터까지 동-서부를 횡단하며 하루 한명 이상의 글로벌 기업 CEO와 만나는 등 강행군을 이어갔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관련 경영 공백과 코로나19 유행으로 글로벌 네트워크가 상당 부분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영향으로 삼성전자 역시 혁신 속도가 떨어진데다 복합위기로 반도체 등 주력 분야 실적까지 악화된 상태다.
이 회장의 이번 출장은 약해졌던 글로벌 네트워크 고리를 강화하는 한편 반도체, AI, 미래차, 바이오 등 삼성의 미래사업을 구체화하는 이정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연쇄 회동이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테슬라가 주도하는 고성능컴퓨팅(HPC), 미래차 영역을 미래 성장 사업으로 낙점했다. 젠슨 황 CEO와 만남으로 전통적인 반도체 분야 수요 위축이 심화된 가운데 HPC 부문에서 수요가 높은 메모리, 시스템 반도체 분야 신규 협업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처음으로 마주한 머스크 CEO와도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한 협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미팅은 이 회장뿐 아니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수장을 모두 대동해 테슬라 경영진과 회동했다는 점에서 차세대 자율주행 반도체 양산 등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7나노 공정으로 테슬라 차량용 반도체를 양산하는 등 견고한 협력 체계를 이어왔다. 최근 4나노 공정까지 수율 안정화를 달성, HPC와 차량용 반도체 시장 공략의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 테일러 시에 짓고 있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도 4나노 공정으로 자동차 시장을 적극 공략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은 ‘제2의 반도체’로 키우고 있는 바이오 분야 혁신을 위해 글로벌 빅파마, 바이오 벤처 인큐베이션 회사 CEO와도 논의를 이어갔다. 10년 전 바이오 시장에 진출한 삼성은 반도체 분야에서 축적한 제조 기술력으로 글로벌 1위 의약품위탁생산(CDMO) 기업으로 도약했다. 제조 분야 글로벌 초격차를 확보하고, 잠재력이 높은 바이오 의약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벤처 투자 등 다양한 협업을 글로벌 빅파마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귀국 후 복합위기 극복과 미래를 위한 ‘뉴 삼성’ 전략 수립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사업 부문장 등 주요 경영진과 출장 결과를 공유하는 한편 내달 예정된 상반기 글로벌 전략회의에서 ‘뉴 삼성’ 비전 실현을 위한 전략을 구체화할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복합위기 속 주력 사업부문 실적 개선과 함께 미래 준비를 위한 비전 수립이라는 큰 과제를 떠안았다”며 “이번 출장이 길어진 것 역시 이 같은 과제를 해소하는 한편 글로벌 네트워크 복원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