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돌아온다'
지난해 반도체 시장 침체로 몸을 웅크렸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가 활기를 되찾았다. 1월 3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코리아 2024'는 반도체 시장 회복을 증명하듯 소부장 업체들이 대거 참여해 신기술을 선보였다. 올해 참여 기업수는 500여개로 작년보다 10% 늘었다. 특히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필수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패키징 관련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소재 분야에서는 동진쎄미켐이 첨단 패키징용 감광액(포토레지스트)과 화학적기계연마(CMP) 슬러리를 공개했다. 반도체 미세화 한계를 극복하고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첨단 패키징가 급부상하면서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다. 웨이퍼에 회로를 그릴 듯 패키징도 배선을 위한 노광 공정이 필요한데, 패키징용 감광액은 이 공정에서 필수 요소다.
HBM처럼 D램을 적층한 후 위·아래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구리가 필요하다. 구리 주입 이후 이를 평탄화할 때 쓰는 재료가 CMP 슬러리다. 동진쎄미켐은 HBM용 CMP 슬러리와 차세대 패키징 기술로 각광받는 '하이브리드 본딩'용 CMP 슬러리 기술도 선보였다.
아바코는 최근 개발을 완료한 웨이퍼레벨패키징(WLP)용 박막증착장비(스퍼터)를 공개했다. 이 회사는 디스플레이 스퍼터를 주력으로 했지만,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4년 간의 연구개발(R&D) 끝에 반도체용 스퍼터를 만들었다. WLP 경우 웨이퍼 휘어짐 때문에 공정 불량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아바코 장비는 웨이퍼 휨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 150도 이하 저온 환경을 유지할 수 있어 공정 생산성을 높인다. 아바코 관계자는 “반도체 후공정업체(OSAT)와 장비 데모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며 “HBM에도 활용할 수 있어 시장 수요가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후공정 분야를 대표하는 패키지 절단 장비 경쟁도 치열했다. 제너셈은 반도체 패키지 절단(쏘잉) 장비를 앞세워, 후공정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제너셈 장비는 무인 자동화가 특징이다. 패키징 절단과 배출 전 과정을 자동화했다. 최근 반도체 제조사가 후공정 무인화 공장(팹) 구축을 서두르고 있어 수요가 기대된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서는 공정 자동화를 통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미반도체도 차세대 반도체 절단 및 검사·선별·적재 장비인 '7세대 뉴 마이크로 쏘&비전플레이스먼트 6.0 그리핀'을 세미콘코리아에서 처음 공개했다. 생산성과 정밀도를 대폭 끌어올린 제품으로, 올해 상반기 출시 예정이다. 한미반도체는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HBM 공정용 본딩 장비와 함께 회사 성장 동력으로 키울 계획이다.
반도체 검사 장비 신제품도 대거 등장했다. 반도체 회로가 미세화하면서 이를 검사하는 기술 난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업계에서는 혁신 기술 요구가 확대되는 추세다. 이에 대응하려는 업계 움직임이 세미콘코리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펨트론과 넥스틴이 대표적으로, 펨트론은 이날 웨이퍼 휨 현상 검사 장비를 출품했다. 반도체 수율과 직결된 웨이퍼 휨을 관리하려면 공정 속도가 늦어질 수 밖에 없는데, 펨트론은 특수 광학계를 적용해 이 문제를 극복했다. 또 웨이퍼 공정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자동으로 측정하고 이를 데이터화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펨트론은 신규 장비와 최근 개발한 웨이퍼 표면 검사 장비로 HBM 검사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넥스틴도 HBM 불량 여부를 검사하는 장비 '크로키'를 세미콘코리아에서 선보였다. 웨이퍼가 틀어진 상태에서도 검사가 가능한 장비다. 넥스틴은 극자외선(EUV) 공정에서 반도체 수율 저하를 야기하는 정전기 제거 장비 '레스큐'도 함께 공개했다.
예스티는 HBM과 반도체 패키지의 웨이퍼 결손 및 경화 결함을 제거하는 장비를 개발했다. 첨단 패키징 장비로 AI 반도체 시장 수요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반도체 장비 국산화 성과도 이목을 끌었다. 원익IPS는 원자층(ALD) 확산 장비(디퓨전) 신제품을 선보였다. 웨이퍼에 여러 막을 형성하는 확산 공정은 반도체 제조에 필수지만 장비는 일본 업체가 주도하고 있다. 원익IPS는 고성능 장비 국산화를 통해 외산 대체에 나선다는 포부를 세우고 해당 장비를 개발했다. 현재 성능 평가를 진행 중이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SML·램리서치·TEL·KLA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사도 세미콘코리아에서 신기술을 대거 선보였다. 특히 이들 기업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점에서 반도체 장비 기술력을 뽐냈다. 또 현장에서 인재 채용을 위한 활동도 병행,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섰다.
세미콘코리아 2024 개회사를 맡은 이용한 원익그룹 회장은 “우리가 맞이할 시대는 방대한 데이터를 생산할 것이며 이를 처리하기 위해 더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다”며 “이러한 패러다임은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체 서플라이체인이 비교적 잘 구축돼 있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게 큰 기회이자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더욱 드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