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기술만으로 부족…자본·마케팅력 모두 갖춰야 살아남는다

[이슈분석] 기술만으로 부족…자본·마케팅력 모두 갖춰야 살아남는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앞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거대한 자본력의 중요성이 커졌다. 선진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제품이 어떤 이득을 줄 수 있는지 기업 고객을 설득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마케팅력도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10나노대 공정의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을 가진 팹은 인텔, 삼성전자, TSMC, 글로벌파운드리, SK하이닉스 정도로 좁혀졌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를 생산하는 팹은 전 세계 1000여개에 달한다. 이 중 비교적 첨단 공정에 속하는 300㎜ 웨이퍼 기반의 팹 중에서도 20나노와 10나노대 공정을 소화할 수 있는 제조사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어진 셈이다.

인텔과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자체 물량만 소화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10나노대 파운드리 서비스가 가능한 곳은 삼성전자, TSMC, 글로벌파운드리로 좁혀진다. 매년 유지비만 수백억, 생산 라인 신설에 십수조원이 필요한 팹은 거대 자본을 뒷받침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기 힘든 사업이 됐다.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것은 장비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첨단 극자외선(EUV) 장비를 개발 중인 ASML은 인텔, 삼성전자, TSMC와 지분 투자 협상을 벌여 수조원을 확보했다. 막대한 EUV 장비의 개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EUV 장비가 10나노와 10나노 이하 반도체를 실현하는데 필수적이어서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 역시 지갑을 열 수밖에 없던 상황이다.

규모의 경제 없이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구조가 되면서 반도체 기업들은 합종연횡으로 덩치를 키워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세계 1위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TM와 4위 도쿄일렉트론이 연내 조건부 합병을 전제로 통합법인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일본 엘피다를 인수했고 램리서치는 노벨러스시스템스를 흡수해 기술과 제품군을 확대했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장비 자회사 3곳을 합쳐 규모의 경제 효과를 노렸다. 국내 장비 기업들도 크고 작은 인수합병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공정이 미세화할수록 투입되는 자본과 시간이 더 늘어나는 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미 D램 제조사들은 20나노 초반대로 오면서 생산성이 하락하는 현상을 겪고 있다. 기술 복잡도가 커지고 생산 공정 과정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SEMI는 팹이 다음 세대 기술로 전환할 때 반도체 용량 손실이 발생하며 월 2만5000장 분량의 웨이퍼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