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메스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장비 계열 회사다. 지난해 국내 장비 업체로는 최초로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하며 세계 장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대내외에 알렸다.
세메스의 시작은 한·일 합작으로 시작됐다. 1992년 8월 삼성전자는 16M D램 개발에 성공하는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주변 기술은 전무했다. 외국 장비에 100% 의존했다. 이렇다 보니 미국과 일본 장비 의존도를 줄여 안정된 반도체 생산 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삼성 내부에서 강력하게 제기됐다.
첨단 반도체 개발은 핵심 장비와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어 설비 기술 내재화는 시급히 확보해야 할 과제로 부각됐다. 당시 외국 업체는 삼성전자를 견제했다. 돈을 주겠다는데도 쉽사리 팔지를 않았다. 당시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영업팀장을 맡은 심상환씨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64M D램 개발에 성공했을 당시 삼성전자는 1라인부터 4라인까지 6인치 장비를 설치하는 데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담당자가 외국 업체를 찾아가 사정을 하다시피할 정도였어요. 모두들 한국에 장비를 판매하길 꺼렸습니다. 그들은 한국 반도체산업이 크는 걸 원치 않았던 겁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장비 국산화를 서둘렀다. 방식은 바로 합작이었다. 처음 합작 파트너로 삼은 회사는 미국의 실리콘밸리그룹(SVG)이었다. 그러나 SVG는 미국 내 50% 이상 자본 참여를 요구하는 등 무리한 조건을 내세웠다. 기술 제공 조건 역시 까다로워서 협상은 결렬됐다. 다음으로 협상을 추진한 회사는 일본의 다이닛폰스크린(DNS)이었다. DNS는 반도체 장비 가운데 세정 분야에 특히 강점이 있었고, 액정표시장치(LCD) 분야 장비도 세계 기술을 확보한 업체였다. 이들의 기술을 확보할 경우 반도체 장비에 대한 기술, 손익 효과뿐만 아니라 이후 디스플레이 분야로도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92년 7월 김광호 삼성전자 사장은 DNS의 다케다니 전무에게 합작사 설립을 먼저 제의했다. DNS도 이를 받아들여 최종 합의가 이뤄졌고, 그해 12월 23일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DNS는 삼성전자를 포함한 한국 시장 상권, 삼성전자는 고도의 설비기술을 각각 확보하는 것이 합작사 설립의 주된 계약 사항이었다.
삼성전자와 DNS는 합작사 명칭을 한국DNS로 정했다. 자본금 10억원에 합작비율은 삼성전자 55%, DNS 30%, SOEI통상 15%였다. SOEI통상은 1980년대부터 삼성전자 반도체 협력 파트너로 활약해 온 회사였다. 삼성전자는 기술력 확보를 위해 DNS와 별도의 기술 도입 계약도 체결했다.
한국DNS는 탄탄한 수요를 바탕으로 설립 첫해인 1994년에 120억원 매출을 올렸다. 성장세는 지속됐다. 1995년 310억원, 1996년 530억원 매출을 냈다. 이 같은 성장세는 합작사 설립 계약 체결 당시 수립한 사업 계획보다 3배 빠른 것이었다.
한국DNS가 파견한 연수단은 일본 DNS 본사로 날아가 기술 연수를 받아왔다. 설비 조립, 조정, 검사, 해체 등 장비 분야의 제반 지식을 습득했다. 한국DNS 연수단은 삼성전자로부터 수주한 세정 장비와 현상액 도포 장비인 스피너를 일본 현지에서 직접 가공했다. 이들 장비는 1994년 4월 22일 한국DNS 제1공장 준공식 때 첫 공개됐으며, 다음 달 삼성전자 기흥공장 5라인에 납품됐다.
한국DNS는 제품 국산화에 박차를 가한다. 1995년 11월에는 자체 설계와 기술로 16M와 64M D램 양산 라인에 쓸 수 있는 자동화 세정 장비를 국산화했다. 당시 반도체 세정 장비 국내 시장 규모는 약 900억원 규모였으며, 이번 국산화 성공으로 300억원 이상 수입 대체 효과를 얻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LG반도체와 아남반도체 등으로도 장비를 판매했다. 당시 LG 내부에선 삼성 계열사 장비를 쓰는 것이 맞느냐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양산 과정에서 이점이 많다는 것을 파악한 뒤론 주문량을 계속 늘렸다. LG반도체가 한국DNS에 고맙다며 감사패를 준 적도 있다.
1997년 한국DNS는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 가운데 매출액 1위 업체로 도약한다. 이 매출은 수입 공급을 제외한 순수 국내 생산분만을 포함시킨 것으로, 적잖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업계에선 평가했다. 한국DNS는 2000년대 들어 디스플레이 분야 장비로 라인업을 확충하면서 성장세를 계속 이어 갔다. 2005년에는 사명을 `세메스`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특허 분쟁도 있었다. 오스트리아 반도체 세정 전문 회사인 세즈(SEZ)는 세메스가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세즈는 세정 장비 분야에서 독보하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갑 같은 을` 행세를 하던 회사였다. 그러나 세메스가 치고 올라오자 점점 입지가 좁아졌고, 소송전을 불사한 것이다. 결과는 세메스의 완승이었다. 결국 세즈는 2007년 미국 장비 업체인 램리서치에 팔렸다.
삼성전자는 2010년 일본 DNS가 보유한 세메스 지분 21.75%를 인수하며 완전한 독립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현재 삼성전자가 보유한 세메스 지분은 91.54%다. 2013년 1월 세메스는 또 다른 삼성전자 장비 자회사인 세크론과 지이에스를 합병, 전후공정 반도체 장비와 디스플레이 장비를 모두 보유한 종합 장비 기업으로 도약했다.
세메스의 지난해 매출은 1조1189억원, 영업이익은 894억원이다. 세메스는 세정 장비 외 식각, 자동화 분야로도 시장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19년까지 매출액 기준 세계 톱5 장비 업체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