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탄핵안을 의결한지 92일만에 헌법재판소가 이를 인용했다.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기는 오명의 주인공이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7월 이후 줄기차게 제기된 의혹에 전면부인으로 맞섰지만 헌재는 대다수 `의혹`을 상당수 `사실`로 받아들였다. 박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간 변곡점이 된 순간을 되짚어봤다.
지난해 7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미르재단 설립 및 모금 개입 정황을 보도에 이어 9월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설립과 운영에 최순실씨가 개입한 정황이 연이어 보도됐다. 당시 청와대는 의혹을 전면부인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후 최순실 국정 개입 의혹은 꼬리를 물었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특혜 입학 의혹으로 사임하는 등 사태가 확산되는 가운데 박 대통령은 카운터펀치를 맞았다. 10월 한 방송사가 최순실씨 태블릿PC를 입수, 이를 바탕으로 그가 대통령 연설문을 포함해 청와대 핵심 문건에 개입한 정황을 파헤쳤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상당부분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박 대통령은 다음날 1차 대국민 담화를 갖고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 최순실 도움 받은 적 있다”면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이라고 해명했다. 진화는 역풍으로 번졌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박 대통령 하야를 처음 주장, 탄핵 열차에 시동을 걸었다. 27일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첫 대규모 주말 촛불 집회가 열렸다. 11월 초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긴급 체포됐다. 이후 검찰은 최순실씨를 구속하고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체포하며 박 대통령 수사 강도를 높였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 담화를 열고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지지율은 5%까지 추락했다. 검찰은 안종범 전 수석과 정호성 전 비서관 구속한데 이어 차은택씨도 체포했다. 검찰은 20일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로 정식 입건, 수사를 본격화하자 야권 탄핵 논의도 탄력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3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임기 단축과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12월 3일 야3당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6일에는 국조특위 1차 청문회가 열렸고 8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9일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 표결이 열렸고 234표로 가결되면서 박 대통령 직무는 정지됐다.
최호 전기전력 전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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