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국, 미국, 일본 연합 컨소시엄이 일본 도시바메모리 인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도시바메모리는 세계 2위의 플래시메모리 생산 업체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메모리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면서 세계 플래시메모리 시장에서 약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바는 21일 이사회를 열고 반도체 자회사인 도시바메모리 매각 우선 협상 대상자로 한·미·일 3국 연합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도시바는 이날 공식 자료를 내고 “기술 국외 유출 우려, 고용 유지 약속 등 종합 평가한 결과 해당 컨소시엄 제안이 가장 우위였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밝혔다.
컨소시엄에는 미국 베인캐피털, 한국 SK하이닉스, 일본 정부가 후원한 관·민 펀드인 일본산업혁신기구(INCJ), 일본 정책투자은행이 참여했다. 이들은 2조엔(약 20조4500억원) 규모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 도시바메모리 지분 100%를 취득할 계획이다. 도시바는 매각 세부 조건을 협의한 뒤 이달 28일 주주총회에서 정식 계약을 맺고 내년 3월 말까지 매각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참여 주체별 지분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업계와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일본 쪽이 과반 이상 지분율을 확보하면서 경영권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베인캐피털과 한국 SK하이닉스는 3조원씩 투입, 각각 15% 수준 지분을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SK하이닉스는 SPC에 자금을 대출해 주는 형식으로 컨소시엄에 참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기업 결합에 따른 독과점 심사 등을 피해 나가기 위한 방편인 것으로 풀이된다.
매각 협상의 가장 큰 변수는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막기 위해 국제중재재판소에 소를 제기한 웨스턴디지털이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와 반도체 공장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메모리 매각 이후 시점에 일반 회사채를 인수, 간접 출자하는 절충안에 어느 정도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최종 결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날 웨스턴디지털은 성명을 내고 도시바가 샌디스크 동의권을 계속 무시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또 도시바가 샌디스크 동의 없이 조인트벤처의 이익을 제3자에게 양도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동의권과 도시바 관련 법적 지위에 대해 자신있다고 밝혀 향후 법정공방으로 이어질 불씨를 남겼다.
도시바는 원전 사업에서 입은 7조원대 손실 만회를 위해 올해 초부터 메모리 반도체 사업 매각을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 메모리 반도체 사업 부문을 분사시켜서 도시바메모리라는 독립 법인을 설립했다.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에는 미국 브로드컴-실버레이크, 대만 훙하이그룹 등 다양한 주체가 경쟁을 벌였다. 100% 지분 매입을 조건으로 2조2000억엔을 적어 낸 브로드컴-실버레이크 컨소시엄이 단순 인수 조건으로는 가장 우세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도시바메모리를 통째로 해외 자본에 넘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일본 경제산업성 주도로 결성된 한·미·일 연합이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배경으로 꼽힌다. 대만 훙하이그룹은 인수가로 무려 3조엔에 이르는 금액을 제시했지만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우려 등으로 일찌감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선 컨소시엄에 간접 방식으로 참여한 SK하이닉스가 도시바와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기대했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낸드플래시 원천 기술을 보유한 일본 도시바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 자산이 미국이나 중국계 자본으로 통째 넘어가는 것을 저지하고 기존 연결 고리를 더욱 강화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