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플러스글로벌이 민간 처음으로 구축하는 파운드리(위탁생산) 연구개발(R&D) 팹은 극심해진 '파운드리 병목 현상'을 새로운 사업 기회로 삼은 것이다. 그동안 R&D 팹은 수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 예산으로 구축되고 운영됐다. 그러나 최근 파운드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민간 팹도 수지를 맞출 여건이 조성됐다. 실제로 파운드리 생산 주문이 밀리면서 기존 고객이 아니면 공정 라인 활용은 거의 어려워졌다. 파운드리 업체가 양산 제품 위주로 라인을 할애하면서 R&D나 시제품 생산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팹리스가 제품 개발 주기를 늦추거나 적시에 출시하지 못해 실기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 파운드리 비용도 연초 대비 최고 50% 이상 급등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테스트 환경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영향으로 국내 소부장 자립과 경쟁력 확보가 시급해졌다. 소부장 국산화를 위해서는 신제품 품질과 성능을 검증할 테스트 환경이 필요하다. 공공 분야에서는 나노종합기술원이 이 역할을 맡아 왔다. 그러나 민간 분야에서 소부장 경쟁력을 향상시킬 테스트 환경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반도체 제조사가 나설 수 있지만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로 테스트 환경을 제공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플러스글로벌이 신사업 기회를 발굴한 것도 이 부분이다. 올해 경기 용인시에 클러스터를 구축한 서플러스글로벌은 주력 사업인 반도체 장비 유통업을 토대로 반도체 R&D와 소부장 테스트 환경을 제공하기로 했다. 파운드리 병목 현상 때문에 수요는 충분하다는 판단이 깔렸다.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는 9일 “용인 클러스트를 조성할 때부터 준비해 온 사업”이라면서 “다수의 반도체 장비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사업 경쟁력은 충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소부장 기업이 자사 제품을 테스트할 때 공정별 장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장비 납기 기간(리드타임)도 대폭 늘어남에 따라 소부장 기업의 필요 장비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중고 반도체 장비 유통으로 서플러스글로벌은 이미 수백대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유휴 장비 등을 적극 활용, 필요한 공정에 적합한 장비를 신속히 투입할 수 있다는 것도 서플러스글로벌의 경쟁력이다.
김 대표는 “파운드리 R&D 팹 운영을 위해 삼성전자 출신 전문가도 영입했다”면서 “소부장 기업을 위한 장비 지원 등 사업 역량을 기르겠다”고 말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