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분수령이 될 한·미 정상회담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경제계 수장들이 대거 동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가 지속될 경우 중국에 제조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직접적 피해가 불가피,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비 수출 제한 유예 끝나면…삼성·SK하이닉스 직격탄
미국은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했다. 미국 기업이 만드는 △18나노(n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16나노 이하 시스템반도체(로직)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장비가 없으면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미국은 어플라이드, 램리서치, KLA 등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업체를 두고 있어 이들 장비의 수출 제한은 곧 반도체 생산 중단을 뜻한다. 여기에 네덜란드·일본도 미국의 첨단 장비 수출 규제에 동참, 10나노 이하 초미세회로 구현에 필수인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도 중국에 들여놓을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년 유예를 받았지만 이것도 오는 9월 말이면 끝난다. 이번 방미 동안 유예 기간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예외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팹)에서는 첨단 반도체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삼성은 자사 전체 낸드의 약 40%, SK하이닉스는 D램의 약 40%를 각각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대응 시나리오 준비하는 韓 반도체
반도체 업계에서는 불확실성 대비 차원에서 단계별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먼저 단기 전략으로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공정을 수행하는 방법이 있다. 중국에서 EUV와 같은 초미세 노광 공정을 할 수 없으니 한국에서 이를 작업한 뒤 중국에서 최종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전공정은 한국, 후공정은 중국에서 나눠 진행하는 방법이다.
클린룸에서 만들어지는 반도체 제조 특성상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SK하이닉스는 2013년 중국 우시 공장 화재 발생 때 이 같은 전략을 취했다. 중국 내 D램 생산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가 취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으로 꼽힌다. 다만 이 경우 각종 비용의 상승은 부담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비행기로 대량의 웨이퍼를 이송해야 해 물류비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SK하이닉스가 한·중 노선 전세기를 임대해야 할 것이라 이야기도 나온다”고 밝혔다.
◇中 반도체 공장, 범용 반도체 기지로 남기거나 최악은 철수
미국이 중국 제재 범위를 확대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생산된 반도체 제품, 즉 '메이드인차이나'에 직접적인 제한을 가하면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중국 팹은 중국 내수 시장 용도로 국한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일부 미국 반도체 고객사가 제품 생산지 증명을 요구하며 중국산 반도체를 기피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국내 팹리스가 생산 기지를 중국에서 대만과 한국으로 돌리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같은 상황까지 직면하게 되면 중국 팹 투자를 포기할 수 있다. 신규 장비의 도입이 막히고 글로벌 시장 공급도 발목이 잡히는 상황에서 중국 팹은 명맥만 유지하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국 시장 철수다. 중국 내 팹 가동이 실리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 생산 거점을 아예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장비를 빼 오는 방안을 중국 정부가 반대하고 중국과의 관계 악화도 우려돼 가장 극단적인 경우로 거론되고 있다.
변수가 복잡하고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워서 반도체 업계가 여러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기로에 선 만큼 정부의 철저한 외교 대응을 주문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과의 협상은 기업에 실질적으로 무엇인 필요한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국 반도체 공장 현황>
(자료 : 업계 취합)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