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 주도권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사업 구조를 재편한다. 인텔 55년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사업 혁신이라고 회사는 자평했다. 핵심은 인텔 반도체 제품 제조를 내부 파운드리 수익으로 집계한다는 것이다. 인텔에서 반도체 위탁생산을 담당하는 ‘인텔파운드리서비스(IFS)’ 매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구도가 바뀌게 됐다. 중앙처리장치(CPU) 등 인텔 제품의 세계 시장 영향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머큐리리서치에 따르면 전체 CPU 시장에서 인텔 점유율은 70% 이상이다.
이런 인텔 제품이 IFS 매출로 잡힐 경우, 인텔은 세계 3대 파운드리 업체로 등극하게 된다. 삼성전자를 앞지르고 2위를 차지할 공산이 크다. 대만 TSMC를 필두로 세계 파운드리 시장 구도가 ‘1강 2중’ 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 중이다. 이 또한 IFS의 성장 기반이 될 가능성이 짙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구조와 유사...IFS에 ‘날개’ 달기
인텔은 여러 사업부로 나눠져있다. 그중 CPU 등 제품 개발과 생산은 각각 ‘기술개발(Technology Development) 사업부’와 ‘제조(Manufacturing)’ 사업부에서 맡는다. 두 사업부의 제품 생산 비용은 ‘인텔 제품 사업부’안에 포함돼 손익이 계산된다. 이 때문에 △클라이언트 컴퓨팅(데스크톱과 노트북용) △데이터센터와 AI △네트워크와 엣지 △모빌아이 등 반도체 제품과 영역별로 매출을 보고해왔다. IFS도 따로 매출을 집계했지만 인텔 제품이 아닌 외부 팹리스 고객 제품의 생산이 주로 이뤘다.
이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의 대표적인 구조다. 가령 삼성전자 DS 메모리 사업부를 보면 D램과 낸드 플래시 ‘생산’에 대한 매출을 따로 잡지 않는다.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일원화된 프로세스를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상황이 다르다. 외부 팹리스 고객 뿐 만 아니라 내부 고객인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의 제품 위탁생산 역시 삼성 파운드리 수익으로 집계된다.
인텔이 IDM 2.0 비전을 내세우며 재편에 나선 사업 구조는 삼성 파운드리 사업부와 유사하다. 인텔이 제조하는 CPU 등 주요 제품을 IFS 수익으로 집계하고 손익 보고도 IFS가 직접 담당한다. 이에 따라 기존 기술개발사업부와 제조사업부는 IFS와 합쳐질 예정이다. IFS라는 거대 사업부가 독립적으로 운영 관리되는 것이다. CPU를 설계하고 판매하는 인텔 제품 사업부는 삼성 시스템LSI 사업부처럼 IFS의 고객이 되는 방식이다. 인텔이 IFS에 힘을 실어주면서 파운드리 사업을 대폭 키우려는 포석이다.
◇비용 절감+생산성 향상...파운드리 주도권 확보 노린다
인텔의 이같은 ‘내부 파운드리 모델’은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이 목적이다. 인텔 관계자는 “기존까지 제품 사업부와 제조, 기술 개발이 합쳐져 있어 중복 비용이 발생하고 사업 속도가 더딘 부분이 있었다”며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면서 이익률을 과거 수준으로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기존 인텔 제품 사업부에 속해져있던 기술개발과 제조 영역은 경쟁자가 없다. 이 때문에 비용 절감에는 한계가 있었다. 생산성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인텔 최초 DDR5 D램을 지원하는 서버용 CPU ‘사파이어 래피즈’가 출시 지연된 것도 이런 사업 구조가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이제 IFS가 인텔 제품사업부(팹리스)를 하나의 고객으로 인식하고 다른 파운드리와 경쟁해야하는 상황이다. 위탁 생산 ‘비용’은 ‘서비스 가격’으로 전환된다. 다른 경쟁 파운드리보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적시에 제품을 공급하려면 IFS 서비스 가격 효율성을 확대하고 생산성도 높일 수 밖에 없다.
인텔은 내부 파운드리 모델이 제품 테스트, 시제품 제작, 생산구조 등 각 분야에서 적게는 5억달러에서 10억달러 연간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토대로 올해는 약 30억달러, 2025년까지 80억~100억달러 반도체 제조 비용을 줄일 것으로 기대했다.
IFS 비용 효율화는 인텔 전체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 가격 정책을 유지할 경우 마진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 가격 설정에 대한 운신의 폭도 넓어진다.
◇IFS도 인텔에 가격 경쟁력·품질 제시해야 ‘무한 경쟁 시대’
이제 IFS도 인텔 제품 사업부에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다른 파운드리 경쟁사와 견줘 경쟁 우위에 설 수 있는 차별화 요소를 제시하지 못하면 고객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인텔 내부 파운드리 모델은 IFS에 날개를 달아줌과 동시에 치열한 파운드리 생존 시장에 IFS를 던져 놓았다.
실제 파운드리 시장에 참전한 모든 플레이어는 같은 상황이다. 삼성전자 시스템LSI 역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않는다. 이미지센서 등 일부 품목은 대만 UMC나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스(GF)를 통해 반도체를 위탁생산한다. 인텔의 전체 반도체 칩 제품 중 20%는 외부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기고 있다. 인텔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인 ‘폰테 베키오’를 TSMC 5·7나노 공정으로 생산하는 것이 대표 사례다. 인텔은 삼성전자 파운드리도 활용하고 있다.
IFS가 매출 규모 측면에서 세계 톱 3 파운드리에 이름을 올리더라도 TSMC, 삼성 파운드리, GF, UMC 등과의 지속적 경쟁은 불가피하다.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인텔은 2030년까지 외부 물량 기준 파운드리 2위 사업자가 되려는 목표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인텔 목표를 실현하려면 내부 물량이 아닌 외부 고객을 대거 확보해야한다. 특히 현재 시장 2위인 삼성전자도 TSMC를 맹추격하기 위해 고객 발굴에 혈안이다. 파운드리 신성장 동력 분야인 고성능컴퓨팅(HPC)과 차량용 반도체(오토모티브) 분야 수주를 급격히 늘리려고 집중하고 있다. 당장 2위 자리를 다툴 인텔과 삼성전자의 승부는 누가 외부 고객을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TSMC·삼성전자와 견줄 ‘생태계’ 조성 시급...2나노 이하에서 승부 볼 듯
IFS 지난해 매출은 8억9500만달러 수준이다. 전년 대비 약 14% 성장했다. 어느정도 외부 고객 확보에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갈길이 멀다. 가장 큰 문제는 첨단 공정이다. 현재 파운드리 서비스가 가능한 인텔 첨단 공정은 7나노미터 정도다. 이미 4·5나노 수율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3나노 양산에 돌입한 TSMC와 삼성전자와 비교해서 상당 부분 뒤처진다.
파운드리 서비스 경험도 필요하다. TSMC와 삼성전자는 오랜 기간 동안 고객과 협력하며 자체적인 파운드리 ‘생태계’를 구축했다. 인텔도 반도체 설계자산(IP)와 설계자동화(EDA) 툴, 반도체 스타트업에 대거 투자하며 생태계 키우기에 나섰지만 선두주자인 TSMC와 삼성전자에 견주면 이제 막 시작 단계다. 고객 팹리스의 설계 요구조건을 IFS 공정에 최적화할 설계 지원(디자인하우스) 환경도 강화해야한다. TSMC는 ‘밸류체인애그리게이터(VCA)’라는, 삼성전자는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라는 디자인하우스 협력 생태계를 확보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생태계 차이로 인텔이 당장 TSMC나 삼성전자에 맞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노리는 건 현재 주류가 된 4·5나노 공정보다 앞선 2나노 이하에서의 승부”라며 “이를 위한 반도체 공장 투자와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만큼 신규 파운드리 공장이 본격 가동될 2024년이나 2025년에 파운드리 성과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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