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년 전, 삼성전자가 메모리 업계 판도를 뒤바꾼 혁신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바로 3차원(3D) 낸드 플래시가 주인공이다. 2013년 7월 낸드 플래시 셀 구조를 3D 수직으로 쌓는데 성공한 삼성전자는 다음달 'V낸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같은 3D 구조는 낸드 플래시 메모리 업계의 표준처럼 자리매김했다.
◇3D 적층 구조로 반도체 미세화 한계 극복
2013년 이전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모두 2차원(2D) 평면 구조였다. 일명 '플레이너(Planar)' 구조다. 1987년 일본 도시바가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처음 개발한 후 25년 넘게 같은 구조가 명맥을 유지했다. 2D 구조는 낸드 플래시 성능을 높이려면 한정된 면적에 최대한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시키는 방식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트랜지스터를 최대한 작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회로를 미세하게 패터닝할 수록 셀 간 간섭이 심해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 성능을 높이는데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2006년 CTF(Charge Trap Flash) 구조를 개발하면서 2D 낸드 플래시는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었다. 기존 도체에 전하를 저장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부도체인 얇은 막에 전하를 보관하는 것이 CTF 기술의 핵심이다. 셀 높이가 대폭 낮아지고 셀 간 간섭이 덜해 상대적으로 낸드 플래시 미세화가 용이했다. 이 CTF 구조 역시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당시 삼성전자에서 CTF 개발 인력은 단 3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또한 한계에 봉착했다. 낸드 플래시 성능을 더 끌어올리려고 했으나 신뢰성 문제로 포기하게 된다. 회로가 더욱 미세화되자 전자 누설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기존 기술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이 때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3D 구조다.
당시 3D 낸드 플래시 구조에 대한 개념은 이미 업계와 학계에서 여럿 제시됐다. 낸드플래시 강자였던 도시바 역시 BiCS와 P-BiCS라는 3D 구조 기술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기존 2D 낸드가 가진 전하 제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3D 구조 개념은 있었지만 실제 상용화는 어려웠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TCAT이라는 구조로 지금까지 낸드 업계를 발목잡은 문제를 해결했다.
TCAT는 독자적인 게이트 전극 공정을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도시바의 BiCS보다는 공정이 복잡하지만 게이트 전극 저항을 훨씬 낮출 수 있어 낸드 플래시 성능 개선을 실현할 수 있었다. 도시바도 결국 스스로 제안한 BiCS를 포기하고 2019년 TCAT를 도입하게 된다. 낸드 기술 경쟁에서 승리한 삼성전자가 업계 주도권을 확보하게 된 순간이다. 허성회 삼성전자 플래시 개발실장(부사장)은 최근 개최된 대한전자공학회 학술대회에서 당시 상황을 두고 “낸드 플래시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이 시장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며 “V낸드를 개발하게 되면서 낸드 플래시 역사가 끊기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V낸드, 낸드 플래시 업계 패러다임을 바꿨다
삼성전자가 2013년 3D 낸드 양산에 성공하면서 메모리 업계는 대전환 시대를 맞이했다. 지금까지 단층으로 배열된 셀이 수직으로 적층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이에 걸맞은 공정 전환도 이뤄졌다. 10나노급 공정 도입으로 셀 간격이 대폭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자가 누설되는 간섭 현상을 극복할 수 있었다. 반도체 미세화 기술 한계를 돌파한 것이다.
이같은 3D 구조는 이제 낸드 플래시 업계 전체로 확산되고 낸드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지표도 회로 미세화보다는 '단수 적층'으로 바뀌었다. 삼성전자가 V낸드를 처음 양산할 당시 적층 단수는 24단이었다. 한해 뒤 32단, 또 1년 뒤 48단 등으로 단수는 지속 높아졌다. 현재 삼성전자를 비롯한 낸드 플래시 제조사는 200단 이상 적층한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10년간 낸드 플래시 메모리 역사를 새로 쓴 삼성전자는 또 다른 10년을 준비한다. 낸드 플래시 생명 연장을 위해서다. 2030년에는 1000단 정도까지 적층을 해야 낸드 플래시가 지속 발전 가능하다고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1000단 적층이 가능하려면 새로운 전류 제어 기술이 필요하다. 단수가 높아질 수록 전류는 필연적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전류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높은 단수를 쌓아 올리는 것이 과제다.
공정 기술도 혁신이 필요하다. 단수가 높아질 수록 3D 구조가 휘어지거나 무너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식각 공정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또 단수는 증가시키되 셀 높이는 줄여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실현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 플래시 생명 연장을 위해 다방면의 역량을 집결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솔루션 경쟁력이다. 입출력(I/O) 제어 등 소프트웨어(SW) 기술까지 총동원해 낸드 플래시 성능을 높인다. 구조 혁신과 공정 혁신에 이같은 삼성전자 솔루션 역량을 녹여내 낸드 플래시 '상품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허 부사장은 “이제는 낸드 플래시 기술 뿐만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와 SW 기술 분야까지 다방면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그래야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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