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조 영역에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첨단 패키징 기술 수요에 따라 기존 전공정(팹)과 후공정(OSAT)으로 구분됐던 반도체 제조 과정이 융복합되고 있다는 것으로, 패키징 기술 선점이 미래 반도체 시장을 주도할 핵심 경쟁력으로 꼽혔다.
문기일 SK하이닉스 부사장은 19일 전자신문 주최 테크서밋에 연사로 나서 “과거에는 종합반도체기업(IDM)과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이라는 '프론트 엔드' 영역과 반도체 외주 패키징·테스트(OSAT) 기업 및 기판 업체 등 '백 엔드'로 구분이 가능했다”면서 “그러나 최근 '미드 엔드'가 등장해 경계를 상쇄하면서 영역 구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문 부사장은 SK하이닉스에서 패키징(PKG) 기술 개발을 총괄하는 인사다. 인공지능(AI)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도 패키징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프론트 엔드와 백 엔드는 반도체 업계 용어다. 웨이퍼 회로 공정을 담당하는 팹(전공정)과 패키징을 담당하는 분야(후공정)를 나누는 경계가 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공정 기업과 후공정 기업 모두 첨단 패키징에 집중하면서 패러다임 전환이 본격화하고 있다. 반도체 미세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첨단 패키징 중요성이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문 부사장은 “융복합된 미드 엔드 영역에서 다양한 첨단 패키징 기술이 등장하고 있고 이를 선점하는 것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첨단 패키징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도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미드 엔드 영역을 공략할 다수 기업이 국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문 부사장은 “우리나라는 IDM과 파운드리, OSAT와 기판 업체들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미드 엔드를 잘 활용하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서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많은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 부사장은 SK하이닉스 신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한 HBM 기술 현황과 로드맵도 공유했다. HBM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대규모 연산을 지원하기 위한 차세대 메모리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등 글로벌 AI 반도체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현재 양산 중인 SK하이닉스 HBM은 D램 12개를 적층해 성능을 끌어올린 'HBM3'다. 차세대 제품인 HBM3E는 현재 신뢰성 평가(퀄)을 진행하고 있다.
문 부사장은 “2025년 말이나 2026년 초에는 HBM4를 개발할 계획”이라며 “16단(D램 16개 적층)으로 입출력(I/O)이 20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HBM 신호 전달 경로를 뜻하는 I/O가 기존 HBM3(1024개)보다 두배 확대된다는 의미로, 제품 성능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HBM4에 최첨단 패키징 기술로 손꼽히는 '하이브리드 본딩'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적층하는 반도체(다이)를 구리로 직접 연결(Cu to Cu)하는 기술이다. 칩 사이의 간격을 줄여 신호 전달 속도를 높이고 메모리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문 부사장은 “현재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HBM이 16단이 됐을 때 기존 접착을 그대로 쓰느냐 하이브리드 본딩을 적용하느냐 고민 중”이라며 “파티클(미세먼지 또는 이물)을 제어하고 의미있는 수율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