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산 전기차·배터리·반도체·철강·알루미늄·태양광 전지 등 전방위 관세 인상을 결정했다. 25~100%에 달하는 인상폭은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불사하려는 미국 정부 의지로 읽힌다.
당장 국내 산업에 미칠 여파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미·중 무역 갈등 확산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기는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 진입하려는 中 전기차, 가격 경쟁력 잃어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25%에서 100%로 인상하기로 했다. 중국 전기차가 미국에 공급되는 물량은 많지 않지만 중국의 미국 시장 공략 강화에 대응해 사전 차단하려는 성격이다.
국내 자동차 기업은 단기 수혜가 예상된다. 미국이 중국산 관세를 인상하면 제품 가격이 상승해 소비자가 구매를 꺼릴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돼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미국 무역위원회(USITC)는 최근 미국을 포함 주요 국가가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평균 20% 인상할 경우 중국 수출은 60.2% 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한국 수출은 10%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관세 인상으로 현대차·기아 등 한국산 고부가가치 전기차 수출이 일부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중장기로 미국이 자동차와 관련 부품 관세 부과를 확대하면 한국산 전기차에도 악재가 될수 있다. 중국산 주요 부품까지 제재받을 가능성 때문이다.
서정란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상무는 “전기차용 반도체, 배터리 뿐 아니라 미래차에 들어가는 중국산 다른 부품까지 관세 등 제재 영역에 들어갈 수 있어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터리 핵심 광물 쥔 中, 보복 대응에 촉각
배터리·배터리 부품·주요 광물 관세는 7.5%에서 25%로 인상된다. 중국산 배터리의 미국 진출 장벽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는 있다.
다만 중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 배터리 경쟁력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 한국 배터리 핵심 재료의 높은 중국 의존도 때문이다. 중국은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의 80% 이상을 쥐고 있다. 중국이 음극재 핵심 원료인 흑연 수출 통제를 강화했던 사례도 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테슬라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생산되는 일부를 제외하고 중국산 전기차가 북미에 공급된 물량이 없기 때문에 단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중국이 배터리 소재 공급을 통제하는 등 미·중 관세·보조금 전쟁으로 이어지면 피해는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으니 시나리오를 잘 분석해 정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범용 반도체 관세 영향 제한적…美·中 갈등 대비 기술 격차 키워야
범용(레거시) 반도체는 기존 25%에서 내년까지 50%로 관세를 올린다. 범용 반도체는 성숙 공정으로 제조된 반도체를 의미한다. 이번 발표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명시된 28나노미터(㎚) 이상 반도체가 해당될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전 세계 범용 반도체 생산 능력 가운데 중국 비중은 현재 31%에서 2027년까지 39%로 확대될 전망이다. 급증하는 중국산 범용 반도체의 미국 진입을 가로막겠다는 것이 이번 관세 인상의 골자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첨단 반도체를 생산해 중국과 겹치는 품목이 많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이 중국산 관세를 인상해도 한국 반도체 대체 물량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과거 중국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을 맡겼던 국내 팹리스도 미국의 대 중국 견제에 대응해 생산 거점을 국내와 대만 등으로 상당 부분 옮긴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에 생산 기지를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당장 영향권에는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첨단 반도체에 해당되는 제품이 주력이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하면 공급망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한국에 직접적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지만 중국에 대한 미국 제재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한국은 두 나라 사이에서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기술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웅 기자 jw0316@etnews.com,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