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팅·네트워크 메모리 구현
성능·전력·크기 등 대폭 개선
팹리스·파운드리와 IP 협력도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주마가편'에 나섰다. 연산과 통신 기능 등을 추가한 신개념 차세대 HBM을 개발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차별화된 기술과 성능으로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HBM 시장에서 후발 주자와 확실한 격차를 벌리겠다는 전략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HBM에 △컴퓨팅 △캐시 △네트워크 메모리 등 새로운 기능을 대거 추가할 계획이다. 회사는 이를 위해 반도체 설계자산(IP) 확보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IP는 반도체 칩 내에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필수 회로 단위(블록)다. 여러 IP가 합쳐져 하나의 칩이 구현된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개발 예정인 6세대 HBM(HBM4)에 시스템 반도체인 메모리 컨트롤러 IP를 탑재할 계획이다. 이후 7세대 HBM(HBM4E)부터는 컴퓨팅·캐시·네트워크 메모리 추가를 준비 중이다.
메모리 컨트롤러는 HBM 기능을 제어하는 반도체다. 기존에는 HBM과 별도로 탑재됐다. SK하이닉스는 HBM 가장 아랫 단인 '베이스 다이(Die)'에 적용하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쉽게 말해 메모리 컨트롤러를 HBM 내부로 품어 전력 효율과 신호 전달 속도를 높이려는 복안이다.
SK하이닉스는 나아가 컴퓨팅과 캐시 및 네트워크 기능까지 더할 채비를 하고 있다. HBM을 최적화하려는 연산 기능 구현이 예상된다. 필요에 따라 그래픽처리장치(GPU)나 중앙처리장치(CPU) 등 프로세서 기능 일부를 HBM에서 수행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캐시와 네트워크 메모리는 AI 반도체 칩 연산 속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단, 기능 추가는 고객사 요구에 따라 '맞춤형'으로 구현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가 이같은 HBM 개발에 나서는 건 기술적으로 AI 반도체 칩 성능·전력·크기(PPA)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AI 반도체 칩은 GPU 등 프로세서를 중앙에 두고, 주변에 HBM를 배치했다. 주변에 메모리 컨트롤러와 같은 시스템 반도체가 추가돼 하나의 패키지를 이루는 구조다.
이 구조는 칩 간 간격(거리) 때문에 신호 전달이 지연되거나 전력을 많이 소모하는 원인이 됐다. 외부에 있던 각종 시스템 반도체 기능을 HBM에 담으면 저지연·저전력에 유리해진다. HBM이 프로세서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또 공간 효율도 높여 전체 패키지 경박단소화가 가능하다.
사업적으로는 차별화를 통한 시장 선도다. AI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HBM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데, 이들의 추격을 따돌리겠다는 의지다.
SK하이닉스는 이미 HBM용 다수의 시스템 반도체 IP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스 다이 제조는 TSMC와 같은 파운드리가 맡기 때문에 고객사(팹리스)와 파운드리가 보유한 IP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에 시스템 반도체 기능을 넣으려면 고객사·파운드리 협력이 필수”라며 “엔비디아-SK하이닉스-TSMC와 같은 동맹 체제가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