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반도체 국산화에 팔을 걷었다. 비메모리뿐만 아니라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가 대상이다. 3000억달러(약 327조원) 규모 세계 반도체 시장의 3분의 2에 달하는 2000억달러 이상 수입하는 물량을 자국산으로 대체하는게 목표다. 중국에서 반도체는 석유 수입 규모를 뛰어넘는 대규모 단일 수입 품목이다.
중국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를 제외한 비메모리 분야 팹리스 부문에서 세계 3위 시장 규모를 형성했다. 지난해 중국은 9% 점유율을 기록한 반면에 한국은 1%에 그쳤다.
기술력 면에서는 이미 한국을 넘어섰다는 평을 받는다. 팹리스 강자가 많은 대만을 넘어 미국과 경쟁하겠다는 포부다. D램 역시 1차적으로는 반도체를 국산화해 내수를 충족하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세계 D램 상위권 진입이 목표다.
◇세계적 팹리스·파운드리 키운 중국
중국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반도체 설계, 제조, 응용에 걸쳐 전 영역 발전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상하이, 장쑤성, 저장성으로 이뤄진 ‘창장삼각주’를 반도체 산업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전략 아래 2010년까지 집적 단지를 조성하는 등 단계적인 발전 방향을 마련했다. 반도체 패키지와 테스트 등 후공정에 치우친 반도체 산업을 2015년까지 전공정으로 확대하겠다는 포부도 세웠다.
당시 중국 정부는 기술 수준 목표를 대만으로 삼았다. 내수 IC 수요의 절반을 국산화하고 2020년까지 수요 80%를 국산화, 세계 3위 반도체 생산 기지로 성장시킨다는 포부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견줄 수 있는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게 큰 그림이다.
이후에는 중국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 국가자주혁신시범구’를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재정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14년 6월 ‘중국 IC 산업 발전 지침’을 발표하고 올해 반도체 산업 매출 목표를 3500억위안으로 잡았다. 10월에는 ‘중국 국가집적회로 산업투자기금’을 조성해 국제적인 인수합병에 속도를 내는 등 반도체 관련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발판을 마련했다.
중국 정부의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아래 반도체 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중국전자신식산업발전연구원(CCID)에 따르면 중국 팹리스 기업은 1990년 15개에서 2000년 98개로 커졌다. 이후 2010년 485개, 2013년 583개로 크게 늘었다. 2014년 중국 상위 10개 팹리스 기업이 2013년 현지 팹리스 기업 매출의 43%(560억달러)를 차지할 정도로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세계 50위 팹리스에 중국은 화웨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 한 곳만 이름을 올렸다. 2014년에는 스프레드트럼, 다탕, 나리스마트칩, CIDC, 록칩, RDA, 올위너 등 총 9개 기업이 50위에 포함됐다.
특히 스프레드트럼은 2013년 중국 국영기업 칭화그룹이 인수한 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빠르게 성장한 대표적 기업이다.
파운드리도 시스템반도체와 함께 성장했다. 화웨이, 레노버, 하이얼, TLC 등 빠르게 성장하는 제조 기업에 힘입어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를 함께 육성하는 효과를 거둔 셈이다. 실제로 파운드리 기업 SMIC는 전체 매출의 약 45% 안팎을 내수에서 거둔다. SMIC의 주요 고객사는 중국과 미국이지만 내수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어 앞으로의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
SMIC도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올해 SMIC는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28나노 공정을 대량 양산하는게 목표다. 이 외에 차별화된 기술 개발, 새로운 팹 가동, 중국과 해외의 다양한 새 파트너 발굴을 올해 사업 목표로 내걸었다.
◇세계서 빨아들이는 반도체 기술
중국 정부는 D램 제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6개 지방 정부를 대상으로 D램 팹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베이징·상하이·허페이·우한과 다른 2개 도시가 D램 팹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종 선정한 1개 지역에 D램 팹을 설립하면 반도체 설계부터 장비, 재료 등 관련 생태계가 형성되므로 자연스럽게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셈이다.
중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해외에서 공부하고 현지 기업에서 반도체 산업을 경험한 인재들이 자국으로 돌아오면서 성장했다. 메모리 분야는 시스템반도체보다 기술 난이도가 높고 실제 칩을 생산하는 공정 기술이 중요해 이 분야를 경험한 해외 자국 인력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중국은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구분하지 않고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확보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이달 초에는 중국 사모펀드 컨소시엄이 세계 2위 CIS(CMOS 이미지센서) 기업인 미국 옴니비전을 19억달러(약 2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고화소 영상 기술이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자동차, 보안, 사물인터넷 등에 걸쳐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로 세계 1위 소니, 3위 삼성전자와 경쟁하게 됐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메모리 기술력을 확보하는데도 적극적이다. 사모펀드를 조성해 모바일 D램, SD램, 아날로그반도체 등을 설계하는 미국 ISSI를 6억4000만달러(약 7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D램 산업 진출의 첫발을 뗐다.
국내는 S램 등 특수용도 메모리를 설계하는 피델릭스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소용량 메모리 수요가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커지고 있어 중국으로서는 메모리 기술력 확보 차원에서 욕심낼 만한 분야다.
세계적인 기업의 기술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인텔이 대표적이다. 인텔은 지난해 중국 IT 기기 주요 생산기지인 청두에 향후 15년에 걸쳐 16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청두 공장을 전면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첨단 테스트 기술을 도입해 내년 하반기 가동이 목표다. 저가형 태블릿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중국 록칩과 제휴했다.
퀄컴도 중국 기업과 견고한 협력 체계를 갖춰 점유율 상승을 꾀했다. 파운드리 기업 SMIC와 제휴해 28나노미터(nm) 공정 기반의 AP 생산을 준비 중이다. 300㎜ 팹 기술을 보유한 파운드리 기업 XMC는 스팬션과 협력해 2017년 양산을 목표로 3D 낸드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