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은행·카드·증권 등 1금융사를 비롯해 2금융권, 빅테크, 중소 핀테크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연공서열을 과감히 파괴한 '디지털 대어' 영입 전쟁이 시작됐다. 국내 금융 환경이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디지털금융 업무 경험이 풍부한 정보기술(IT)업계 베테랑을 영입해 디지털금융 경쟁력을 빠른 시간 안에 끌어올리기 위한 포석이다. 이에 더해 디지털 조직과 업무를 새롭게 재편하는 등 IT 주도의 조직 전환도 시작됐다.
은행은 순혈주의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조직문화가 강했지만 최근 외부 디지털 전문가를 전략적으로 영입하면서 이를 파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플랫폼금융을 선언한 후 빅테크 분야 전문가를 속속 영입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클라우드 박기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테크그룹 소속 테크기술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은행의 클라우드와 소프트웨어(SW) 역량을 강화, 선두 금융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포석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카드 상무를 거친 디지털·빅데이터 전문가 윤진수 전무를 데이터전략본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플랫폼 개편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등 성과를 거둬 지난해 말 테크그룹 총괄 부행장으로 선임됐다.
이에 앞서 네이버 미디어플랫폼리더·라인파이낸셜플러스·삼성SDS 출신 성현탁 부장을 리브부동산플랫폼 부장으로 영입했다. 플랫폼 기업의 경험과 성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KB부동산 리브온의 차세대 애플리케이션(앱)인 '리브부동산'을 출시, 3개월 만에 100만 고객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신한은행도 디지털혁신단과 산하 4개 조직 책임자를 모두 외부 전문가를 중용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김철기 디지털혁신단장은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출신으로, 2017년 빅데이터센터장으로 영입됐다. 지난해 12월에는 김혜주 상무(삼성전자, KT)와 김준환(SK C&C) 상무를 영입해 각각 마이데이터유닛 총괄, 데이터유닛총괄을 맡겼다. 최근에는 삼성SDS AI선행연구랩장을 지낸 김민수 부서장을 통합AI센터(AICC)장으로 영입했다. 1977년생을 부서장으로 영입한 파격 행보다. 김현조 디지털R&D센터장도 2015년 영입된 외부 전문가다.
우리은행은 최근 DT(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추진단을 디지털그룹으로 격상시켰다. DI추진단과 디지털금융단을 신설하면서 김진현 전 삼성화재 디지털 부장을 DI추진단장으로 영입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는 대주주인 KT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를 행장으로 영입해 혁신과 성장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올해 3대 행장으로 서호성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부사장을 영입했다.
서 행장은 취임 후 신속성, 소통, 즐거움과 함께 '디지털화'를 4대 중요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취임 후 이풍우 전 우리은행 기업영업본부장, 김기덕 전 리딩에이스캐피탈 대표, 한진봉 전 현대카드 오퍼레이션 본부장을 잇달아 영입하며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적 쇄신에 앞장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드·보험 등 제2금융권도 금융권 디지털 확대 기조에 맞춰 외부 IT 전문가를 수혈하고 있다.
MBK 파트너스에 인수된 롯데카드는 지난해 하반기 부산은행 디지털금융본부 디지털금융을 총괄한 한정욱 디지털본부장 전무를 영입, 전문성 강화에 나섰다. 현대카드 플랫폼기획실장, 밸런스히어로 VP를 거친 원만호 디지털사업부문장 상무와 삼성카드 비즈애널리틱스팀장, 넥스클라우드 연구소장, 애자일소다 대표컨설턴트 등을 지낸 고영현 BDA부문장 상무 등도 각각 영입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총 5명의 각 분야 IT 전문가를 영입했다. 최근 다양한 플랫폼 기업과 상업자표시신용카드(PLCC) 출시는 물론 플랫폼 기술 확대를 추진하면서 플랫폼 기술을 내재화하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
퍼마일자동차보험으로 보험 업계 혁신을 진두지휘하는 캐롯손해보험도 외부 IT 전문가 영입에 속도를 낸다. 박관수 캐롯손보 신사업부문장은 액센추어에서 컨설팅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한 뒤 이베이, 11번가 등 이커머스, 카카오에서 선물하기 페이먼트 초기 개발사업을 경험했다.
전통 금융권뿐만 아니라 빅테크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디지털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토스의 경우 세계적 화이트해커인 이종호 라인시큐어 보안기술연구원을 보안기술팀 리더로 영입했다. 이종호 리더는 미국 데프콘, 일본 세콘, 대만 히트콘 등 세계 3대 해킹 방어 대회를 휩쓰는 등 국내 보안 업계에서 이른바 '전설'로 불리는 보안 전문가다.
토스는 이종호 리더를 주축으로 화이트해커팀을 구성해 서비스 아키텍처를 짜는 시점부터 보안 엔지니어가 참여하도록 했다. 토스 보안팀은 토스 코어뿐만 아니라 인슈어런스와 페이먼츠, 증권, 뱅크팀 등 계열사 4곳 서비스를 아우르게 된다.
다날은 삼성카드 출신 임원들이 주축이 돼 디지털 혁신을 이끌고 있다. 2019년 신임 대표로 취임한 박상만 전 삼성카드 전무를 필두로 황용택 다날핀테크 대표, 장성원 다날핀테크 마케팅 본부장, 이명규 비밀리 대표와 윤영현 비밀리 본부장 모두 삼성카드 출신이다. 이들은 가상자산 '페이코인(PCI)'과 블록체인 생태계 활성화를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