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사업 부문장 전원 교체라는 파격 인사에 이어 임원 인사에서도 젊은 리더를 적극 발탁하며 '뉴 삼성' 초석을 마련했다. 고객가치 향상과 기술 초격차에 방점을 찍고 공이 있는 인재는 직급과 연차에 관계없이 과감히 승진시켜 힘을 실어줬다. 이재용 부회장이 언급한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감안해 전사 혁신에 속도를 높일 젊은 피를 대대적으로 수혈했다는 평가다.
◇'젊은 리더십' 대거 확보...미래 CEO 키운다
올해 삼성전자 임원 승진자는 부사장 68명, 상무 113명, 펠로우 1명, 마스터 16명 등 총 198명이다. 지난해 214명(부사장 31명, 전무 55명, 상무 111명, 펠로우 1명, 마스터 16명)등과 비교해 올해는 16명이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를 제외하고 최근 5년을 비교하면 2017년(221명)에 이어 승진 임원이 가장 많았다.
단순 수치는 지난해보다 적었지만 변화는 클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7일 사장단 인사에서 반도체(DS), IT모바일(IM), 소비자가전(CE) 부문장을 모두 교체하고 IM과 CE를 통합한 세트(SET) 부문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임원 인사도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됐다.
실제 올해 부사장 승진은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인사제도 혁신안에 따라 전무 직급이 없어진 결과다. 직급별 인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부사장급의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예상된다. 부사장 승진자 중 40대는 전체 15%(10명)에 이른다.
이번 인사는 성과주의에 기반해 젊은 인재 등용이 두드러졌다. 40대 부사장 대거 발탁과 함께 역대 타이 기록을 세운 30대 상무 승진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소프트웨어(SW) 개발 등 기술인재와 과감한 신사업 추진으로 성과를 거둔 인재를 발탁하면서 조직에 혁신 바람을 유도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확실한 성과를 보이면서 성장 잠재력을 갖춘 인재를 적극 발굴, 미래 리더십을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SET부문, 고객가치 창출 인재 중용
승진 인사에서 주목할 점은 고객경험(CX) 분야의 성과자를 전진 배치했다는 것이다. 가전, TV, 스마트폰 등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1위를 유지하지만 경쟁자와 격차는 갈수록 줄고 있다. 하드웨어(HW)를 넘어 차별화된 고객경험만이 경쟁자와 초격차를 유지할 무기가 된다. 최근 CE와 IM부문을 SET 부문으로 통합한 것 역시 기기간 연결로 고객경험을 높이겠다는 전략이 반영됐다.
삼성전자의 사업 전략과 사장단 인사 기조는 승진 인사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안용일 SET부문 디자인경영센터 UX센터장 부사장은 사용자경험(UX) 전문가로, 제품간 연결성 개선 등 고객경험 혁신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공지능(AI) 컴퓨팅 전문가로 꼽히는 고봉준 VD사업부 서비스 SW랩장 부사장은 역시 다양한 TV서비스를 개발해 스마트TV 차별화와 소비자 경험을 높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올해 가전과 식품 구독 서비스를 결합한 제품 출시로 시장 새 바람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 박찬우 생활가전사업부 IoT Biz그룹장 부사장 역시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을 활용해 다양한 편의 서비스를 제공한 점이 발탁 배경으로 알려졌다.
무선사업부도 폴더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끊임없는 혁신과 차별화된 모바일 경험을 제공하는데 앞장선 전문 인재를 과감하게 전진 배치했다.
부사장으로 승진한 홍유진 무선사업부 UX 팀장은 UX 개발 경험을 보유한 UX 전문가다. 올 하반기 삼성폰 실적을 견인한 폴더블 스마트폰 UX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본격적인 폴더블폰 대중 확산을 위해 UX 최적화에 보다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지영 무선사업부 전략제품디자인그룹장은 무선제품 디자인 전문가로, '컨투어컷'으로 기존 스마트폰 획일화된 디자인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은 갤럭시S21 아이덴티티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종만 무선사업부 스마트싱스 개발그룹장은 IoT, SW플랫폼 및 구조 설계 전문가로, 통합 SET부문에서 고객 경험을 높일 모바일, 가전 간 시너지 확대에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DS부문, 메모리 사업 경쟁력 확대에 파격 승진
삼성전자 DS부문 임원 인사는 '기술'과 '사업'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 1위 달성이라는 비전과 메모리 분야 초격차 확대라는 기조가 그대로 나타났다.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한 박성범 상무(37세)는 모바일 프로세서 설계 전문가로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는 인재다. 삼성전자는 AMD와 협업으로 삼성전자 독자 AP인 엑시노스 성능을 고도화시켰다. 차기 엑시노스(가칭 2200) 성능을 전작 대비 상당 수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데, 박 상무 공로가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 임원인 마이클 고다드 시스템LSI사업부 미국 삼성오스틴연구소(SARC) 상무 승진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고다드 상무는 SARC 연구소장으로 삼성전자 독자 CPU 기술 개발과 GPU 기술 내재화에 힘썼다. 시스템온칩(SoC) 경쟁력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다. 시스템 반도체에 힘을 실으려는 삼성전자 전략이 읽힌다.
차세대 반도체 기술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지도 나타났다. 김동원 반도체연구소 로직 TD2팀 펠로우는 공정 미세화 한계 극복을 위한 핀펫·MBC펫 등 신소자 개발과 제품화에 기여했다. MBC펫은 삼성전자가 내년 상반기 양산 예정인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 '게이트올어라운드(GAA)'의 삼성 독자 기술이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는 사업 경쟁력 향상이 인사 기조다. 메모리는 세계 1위 초격차를 견고히 한 공로자를 승진시켰다. 손영수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팀 부사장은 차세대 D램 로드맵 구축과 신규 고객 확보에 힘써왔다. 박찬익 미주총괄 부사장도 주요 거래선에 적극적인 신제품 프로모션과 기술 지원을 전개했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성과를 극대화했다는 평가다. 김경륜·오름 메모리사업부 D램 설계팀 상무도 각각 D램 설계 역량 확대와 제품 완성도 향상에 기여했다.
신승철 파운드리사업부 영업팀 부사장은 반도체 분야 글로벌 영업 전문가다. 신규 고객을 발굴하고 고객 네트워킹 역량을 바탕으로 파운드리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 정신영 파운드리사업부 제품기술팀 상무는 고객사별 공정 평가 환경 구축, 신규 분석방법론 개발로 파운드리 공정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고객 요구에 걸맞은 환경 조성으로 고객 저변을 확대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