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반도체 기업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이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10%를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 분야에서는 R&D 투자 비율 차이가 크진 않지만 반도체 팹리스에서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중국, 일본, 대만과 견줘 R&D 비중이 적어 향후 시스템 반도체 역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기업의 지난해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은 8.1%다. 미국 16.9%, 중국 12.7%, 일본 11.5%, 대만 11.3%와 견줘 훨씬 뒤처진 수치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 가운데 가장 낮은 R&D 비율을 기록했다.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는 해외 기업 간 격차가 크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R&D 비율은 각각 8.1%, 9.4%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대만 TSMC가 8.5%, 메모리 업계 3위인 마이크론이 9.1%인 것을 고려하면 큰 차이가 없다. 인텔만 지난해 20% 넘는 R&D 비율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TSMC 간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첨단 공정에 집중 투자한 결과로 보인다.
반도체 제조업에서 R&D 비율이 대동소이한데도 우리나라 전체 비율이 낮은 건 팹리스 등 시스템 반도체 R&D 투자 비중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팹리스는 반도체 설계자산(IP) 개발과 관련 소프트웨어(SW) 확보를 위해 다른 영역 대비 R&D 비중이 크다. 세계 팹리스 상위 3개사인 퀄컴이 17.5%, 엔비디아가 23.5%, 브로드컴이 13.3%의 R&D 비율을 기록한 것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대만 미디어텍도 매출의 20% 이상을 R&D에 투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표 팹리스인 LX세미콘은 지난해 R&D 투자 비중이 9% 수준이다. 매출 규모가 커지면서 R&D 비율이 소폭 줄어든 이유도 있다. 그러나 해외 기업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팹리스 매출 상위 기업 가운데에는 1%도 안 되는 R&D 비율을 기록한 기업도 있다. 상위 팹리스 기업의 R&D 투자가 적다 보니 반도체 전체 R&D 비율을 낮춘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상위 매출 팹리스가 첨단 반도체 개발보다는 성숙 공정 제품에 집중하다 보니 해외와 견줘 R&D 비중이 작을 수 있다”면서 “제품 개발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디자인하우스 등 설계지원 업체까지 포함한 결과 R&D 비중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번 조사 결과는 정부·공공기관·대학 R&D 비용을 포함하지 않았다. 국내 팹리스는 중소기업이 많아 공공 R&D 과제를 수행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공공 R&D 비용 지원을 제외하면 기업 자체의 R&D 투자 비중은 더욱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팹리스를 중심으로 시스템 반도체 기술 개발 역량을 기를려면 R&D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면서 “기업 자체 R&D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최근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을 발표하며 국내 팹리스 30개사를 '스타 팹리스'로 선정, 기술개발과 해외 판로 확대 등 전방위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전력반도체, 차량용반도체,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차세대 반도체 R&D 지원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송윤섭기자 sys@etnews.com,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