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수면 위로 부상한 '미·중 무역 갈등'은 2020년대 들어 전쟁을 방불케할 정도로 첨예해졌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기술 패권 전쟁이 한층 가열된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경제를 더욱 침체시켰고 인플레이션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산업 경쟁력 위협 요소가 곳곳에서 등장했다.
2020년대는 세계 경제와 기술 지도가 바뀔 만큼 시장이 급변하고 자국 중심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속에서 우리나라가 기술 주도권을 선점,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 시장을 관통하는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부터 인공지능(AI), 차세대 모빌리티와 에너지까지 시장 패러다임을 바꿀 미래 기술에 대한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시점이다.
◇일본 수출규제 후 소부장 국산화 성과
2019년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정치·외교가 본격 개입된 첫 사례로 언급된다. 당시만 하더라도 취약한 우리나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공급망 체계에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특히 첨단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극자외선(EUV) 감광액 등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 빨라졌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 소부장 기업의 피땀 어린 연구개발(R&D) 끝에 다수 기술을 국산화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일본 수출규제 이후 100대 핵심 품목 대일의존도는 2019년 30.9%에서 지난해 24.9%로 감소했다. 소부장 전체 대일 의존도도 17.1%에서 지난해 역대 최저인 15.9%로 낮아졌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여전히 우리나라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각종 소부장은 해외 의존도가 높다. 반도체 장비 경우 국산화율이 20% 수준에 그친다. 반도체가 국가 전략 무기로 탈바꿈하고 외교·안보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은 만큼 소부장 분야 첨단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메모리에 편중된 소부장 생태계를 시스템 반도체까지 확대하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비 기술 고도화가 주문된다.
◇인공지능(AI) 기술 확보 총력 기울여야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 분쟁의 핵심을 AI 주도권 쟁탈전으로 분석한다. 연평균 43.4%씩 성장해 2025년 1260억달러(스태티스타 전망)에 이를 시장을 중국에게 뺏기지 않기 위한 미국의 견제가 분쟁을 야기했다는 평가다. 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 수출규제 등도 중국에 AI 반도체 등 미래 기술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미국의 행보로 읽힌다.
미래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해 우리나라도 AI에 공격적인 투자가 불가피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통신사와 소프트웨어(SW) 기업 중심으로 AI 기술 확보에 한창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AI 반도체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생태계가 꽃피는 건 긍정적인 대목이다.
하지만 미국과의 AI 기술 격차가 높고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측면에서 중국에 크게 밀리는 만큼 차별화된 전략이 시급하다. 현 정부가 '디지털 경제 패권 국가로의 도약'을 강조하며 내세운 방안 가운데 첫 번째가 AI 산업 육성이다. 세계 최대 AI 인프라를 조성하고 누구나 AI 기술 개발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AI 기술을 도입, 시장 저변을 확대하기로 했다. AI 기술 초강국을 위한 대한민국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된다.
◇반도체·모빌리티·에너지 산업 기술 주도권도 확보해야
삼성전자가 지난 7월 세계 최초로 3나노 공정 양산에 돌입했다. 첨단 공정 파운드리 주도권을 확보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시스템 반도체 제조 역량을 가늠할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 TSMC에 한참 뒤처진 상태다.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기업뿐 아니라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 미국, 중국, 일본, 대만, 유럽 등이 대규모 세액 공제를 앞세워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는 배경이다. 우리나라도 정부와 국회에서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과 입법에 나서고 있다. 업계 의견을 반영해 인재 양성부터 R&D), 시설 투자를 유인할 실효성 있는 제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이제는 전기차를 넘어 자율주행차 시대를 앞두고 있다. 미래차는 배터리부터 AI까지 첨단 기술을 총망라한 집합체로 미래차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지 않으면 기술 초강국이란 이름이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수소연료전지와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에너지 기술 확보도 '테크코리아 4.0' 실현을 위한 선제 조건이다.
[2020~2022년 주요 이슈]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