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이병철 삼성 회장의 '도쿄선언'이 40주년을 맞았다.
최근 반도체 위기론이 팽배한 가운데 삼성전자의 '뉴(New) 삼성' 비전 실현을 위한 반도체 혁신에도 시사점이 있다.
도쿄선언은 삼성 '반도체 신화' 씨앗을 뿌린 날이자 우리나라 산업사의 한 획을 그은 선택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1974년 12월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독자 기술이 없는 허울뿐이었다. 당시 이병철 회장은 일본, 미국 등을 돌아보며 반도체 사업 구상을 마친 뒤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선포했다.
반도체 강국의 냉소와 내부의 반대에도 이병철 회장은 거침없는 투자를 통해 도쿄선언 6개월 만에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 개발 성과를 이뤘다. 1년 뒤에는 삼성반도체 기흥1공장을 준공하며 세계 세 번째 반도체 생산국으로 거듭났다. 이건희 회장 역시 반도체 사업을 지속 강화한 결과 도쿄선언 10년 뒤인 1993년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 세계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이후 30년 동안 1위를 지켰지만 최근 상황은 녹록지 않다. 메모리 수요 둔화와 가격 하락 속에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6.9%나 하락하며 부진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 출범한 이재용 회장 체제의 고민도 깊다. 압도적 초격차에 기반을 둔 '뉴 삼성' 혁신이 반도체 위기에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이 지난해 8월 복권 후 첫 공식 행보로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세상에 없는 기술을 미래를 만들자”고 강조한 것 역시 위기 상황을 고려한 주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이번에도 위기 속에 승부수를 던졌다. 침체기에도 예년과 같은 반도체 투자를 유지하기로 했다. 인위적 감산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격적인 R&D와 설비 투자로 위기를 정면 돌파, 초격차 기술력과 시장 리더십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오는 2025년 반도체 R&D 전용 라인을 가동하고 2028년까지 연구단지 조성에 20조원을 투입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재근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은 “반도체 불황 때 적극적인 투자가 향후 호황기로 들어섰을 때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를 넘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삼성전자가 30년째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시스템 반도체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파운드리 경우 여전히 시장 1위인 TSMC를 넘지 못하고 있다. TSMC보다 한발 앞서 3나노라는 최선단 공정 양산에 성공했지만 안정적 양산 체계를 굳혀서 수익을 실현하는 게 시급하다.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지난해 3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6.1%로 압도적 1위다. 삼성전자는 15.5%로 2위에 머물렀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내놓으며 이 분야에만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2021년에는 추가로 38조원을 투입, 총 17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실현할 강력한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40년 전 이병철 회장의 결단과 도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