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보다 성능이 앞선 HBM 개발에 연이어 성공하고 있다.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는 미국 정부의 지원까지 더해져 한국 메모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하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이 준비하는 차세대 HBM이 전력 소모량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보다 우위에 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안에 정통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 HBM 신제품이 저전력 성능 평가에서 우수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며 “국내 HBM 업계에서도 마이크론의 저전력 기술을 인정하며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의 차세대 HBM은 'HBM3E 12단'으로 추정된다. D램 셀을 12단으로 수직 적층한 메모리로, 업계 처음 상용화가 시도되는 제품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을 조합한 AI 반도체는 전력 소모가 커 저전력 기술이 중요하다. 저전력을 구현해야 막대한 데이터센터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발열 문제도 해결된다.
마이크론은 지난 2월 공개한 HBM3E 8단에서도 경쟁사 대비 30% 전력 효율이 우수한 제품을 선보여 세계 최대 AI 반도체 업체인 엔비디아 공급에 성공했는데, 차세대 HBM에서도 또 다시 앞서 나갈 기세다.
마이크론은 약점으로 지목됐던 생산능력(CAPA)도 빠르게 늘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의 HBM 생산능력은 올 연말, 12인치 웨이퍼 기준 2만장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생산능력의 20% 정도지만 내년에는 3~4배 늘어나 양산능력에서도 위협이 될 전망이다.
마이크론은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한 만큼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올해 연간 시설 투자 계획을 기존 75억달러에서 최근 80억달러(약 11조원)으로 상향했다. 차세대 HBM 생산을 위해 미국 뉴욕주와 아이다호 주에 신규 공장도 건설 중이다.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해 자국 중심 반도체 지원 정책을 쏟아내는 미국 정부와 마이크론이 시너지를 내는 모습이다.
마이크론 투자액의 상당 부분이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으로 충당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은 미국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 따라 61억달러(약 8조4100억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인텔·TSMC·삼성전자에 이어 네번째로 큰 규모다.
박진섭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어떤 국가가 세계 반도체 패권을 쥐느냐에 대한 경쟁이 본격화 된 것으로, 국내 업계도 이에 대응한 협업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