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생 56년의 탤런트 겸 영화배우 백일섭이 연기·예능 등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근 경기도 모처에서 배우 백일섭과 근황 인터뷰를 가졌다.
백일섭은 1965년 KBS 공채 5기 탤런트로 매체 연기에 입문, '아들과 딸'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엄마가 뿔났다' '솔약국집 아들들'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빛과 그림자' '오작교형제들' 등 다양한 드라마와 '별들의 고향(1974년)' '한반도' '두근두근 내 인생' 등 스크린 작품, 연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다양한 영역의 연기를 펼친 탤런트 겸 배우다.
최근에는 2013년 시작된 tvN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필두로, MBN '모던패밀리', KBS2 '살림하는 남자 시즌2', MBN 신규예능 '그랜파'까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본연의 인간미를 자연스럽게 선보이는 한편 내달부터 전개될 연극 '장수상회'를 병행하는 등 다채로운 행보를 펼치고 있다.
백일섭은 1969년 국내 최초로 청와대 초청을 받은 연예인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56년간 연기 인생 속에서 열혈 청년부터 온화하고 친숙한 아버지 이미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감은 물론 호쾌하고 유쾌한 본연 인간미까지 다양하게 선보이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백일섭은 인터뷰 동안 특유의 유쾌한 모습으로 연기 인생 속 다양한 부분에 대한 소회는 물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열린 마음가짐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TV 대작이나 홈드라마가 잘 나오지 않는지라 연기 행보는 조심스럽게 검토하는 중이다. 사실 최근 잘 나오는 막장 드라마 등에서 내가 할만한 역할은 없는 것 같다(웃음).
다만 케이블이나 공중파 재재방송 형태로 나오는 '아들과 딸' '엄마가 뿔났다' 등 작품을 직접 보면서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있다. 또 연극이나 예능 등 다양한 제안을 검토하며 상황마다 출연하고 있다.
-56년간 연기를 해오면서 열혈남에서 푸근한 아버지, 호쾌한 할아버지 등 자연스러운 역할 변화를 이뤘다. 느낀 감회는 어떠한가.
▲안방극장 초반에 강인한 역을 맡았지만 사실 첫 데뷔가 노인 역할이었다. 나이대에 맞게 그 배역을 맡으면서 적극적으로 해왔다. 현재는 50~60대 역할에 머물러있다.
현재 80에 가까운 나이지만 들어오는 제안들도 6070 실버세대의 모습이다. 병에 시달린다거나 올드한 느낌은 들어오지 않지만 하고 싶지도 않다. 여전히 활발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고 그러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데뷔 초중반까지 여러 연속극을 활발히 해왔을 때의 기억과 최근 기성세대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작품이 겹쳐진다. 우선 데뷔 초중반 1~2년간 기간으로 작업했던 '소양강' '영산강' 등 작품들이 떠오른다. 40~50년 전 작품이라 현 세대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한창 활발하게 연기활동을 펼쳤던 그 시절 작품에 대한 기억이 또렷이 있다.
최근 대중이 기억할만한 작품으로는 앞서 말했던 '아들과 딸'을 필두로 7년간 배역을 맡았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가장 근접한 시점에 했던 '엄마가 뿔났다' 등이다.
각 작품들은 정말 열심히 했다. 특히 '엄마가 뿔났다'는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즐겁게 몰입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최근 대중이 기억하고 조명하는 백일섭의 캐릭터 연기 중 가장 큰 상징점은 '아들과 딸' 속 '홍도야 우지마라' 가창 장면이다. 당시 장면은 애드리브였나.
▲애드리브 맞다. 당시에 저도 작가도 연출도 '노래 부르고 들어온다' 정도로만 설정해놓은 상태였다. 더구나 원테이크였다. 그런데 어쩐지 장면에 있어서 새로운 표현이 하고 싶었다. 밤 장면이라는 점을 감안해 시간대를 기다리면서 상황을 설정한 것이다.
일부러 취한 듯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상황을 조성하면서 당시로서는 은연중에 용인되던 소변 장면과 함께 당시 알고 있던 그 노래 파트를 제 멋에 겨워서 불렀다.
현장에서도 카메라 감독이 웃다 자빠져 NG가 났었는데, 방영분을 통해 대중에게도 많이 주목받았다. '아들과 딸' 작품이 지닌 애환 어린 모습 속에서 유쾌하게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한다.
-56년 연기 인생을 걸어왔다. 각 작품을 연기할 때마다 나름의 노하우와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이다. 대본 속 인물에 대한 것을 절대적으로 생각한다. 작가도 대본을 쓸 때 인물설정을 구상하지만 배우로서도 인물을 고민하는 게 당연하다.
그 때문에 작품을 들어가기 전에 많이 고민을 하곤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캐릭터의 모습을 내 속에 체화시키게 된다.
그러다보면 녹화 시작점부터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내 모습으로 소화된 캐릭터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을 가장 가깝게 보실 수 있는 것이 '아들과 딸'이나 '엄마가 뿔났다' 등 작품 속 캐릭터다.
-예능이 아닌 안방극에서 5~6년 정도 볼 수 없었다. 이유가 있는지.
▲2008년 '엄마가 뿔났다' 이후 '솔약국집 아들들'(KBS2, 2009), '주홍글씨'(2010~11, MBC), '오작교 형제들'(2011~2012, KBS2), '빛과 그림자'(2011, MBC), '힘내요 미스터김!'(2012, KBS1), '결혼의 여신'(SBS, 2013) 등 거의 매년 작품을 해왔다.
그런데 '더이상은 못참아'(2013~14, JTBC) 이후 허리 디스크로 수술을 받게 되면서 잠시 쉬는 와중에 대중적인 트렌드를 비롯한 상황 전반이 바뀌기 시작했다. 거기다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쳐지면서 활약할 수 있는 범위가 다소 줄어들었다. 그래서 다양한 영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매체나 무대 연기 등에서 제안받고 있는 것이 꾸준히 있어서 검토 중이기도 하다.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예능 활약이 두드러진다. 첫 발을 내딛게 된 계기와 현시점은 어떤지.
▲앞서 말했듯 개인적인 일과 트렌드 변화에 따라 다양한 분야를 살펴보던 중 눈에 띄었다. 솔직히 말해서 재밌으니까 접근하게 된 것이 크다(웃음).
그동안 해왔던 드라마는 특정 캐릭터 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예능은 내 개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서 매력이 있다.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살림하는 남자 시즌2' '모던패밀리' 등을 했다. 최근에는 2018년부터 연락해오던 'TV는 사랑을 싣고 2'의 마지막 회차와 함께 10일 시작한 MBN '그랜파'로도 나서고 있다.
조금씩 섭외가 들어오는데 그때마다 내 나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결정하고 있다. 이렇게 예능을 하는 동안에 또 다른 인연이 쌓이고 있다. 꽃할배 당시에 함께 했던 PD들은 물론 '살림하는 남자 시즌2' 당시 기다려주겠다는 PD, 2년 넘게 연락해준 'TV는 사랑을 싣고' 제작팀 등 다양한 인연들이 있다.
-기성·노년세대 대표에 그치지 않고 트렌드를 함께 즐기는 실버세대의 아이콘으로서 존재감이 있다. 최근 대중문화 트렌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지금 세대는 그 나름대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하지만 최초 의도와 달리 기존과 같아져 버리는 경향성이 있다.
또 인기 스타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폭넓은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이 흔치는 않은 듯하다. 물론 개그계는 물론 드라마, 영화에 이르기까지 인기배우들이 참 많다.
하지만 과거 여배우 트로이카나 신성일 배우 등 세대 폭을 불문하고 장기적으로 아우르는 아티스트들이 흔치 않은 게 현실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경향들은 문화적인 호흡이 짧아지고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트로트 오디션 이후 가요계 집중도 그러한 부분을 반영한 듯 보인다. 개인적으로 미스트롯 김의영, 미스터트롯 임영웅 등을 좋아한다. 평소 좋아하는 장윤정의 앨범 흐름과는 달리 김의영·임영웅 등 가수들이 발표하는 자기곡이 부족하거나 없는 상황과 함께 방송만 거듭하는 것 또한 어쩌면 빠른 흐름 속에서 여유 없는 대중적 모습을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이러저러한 상황 속에서 조금은 더 좋아졌으면 한다.
-TV 드라마와 영화 등 매체 연기 중심으로 해왔다. 내달 연극 '장수상회' 참여는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을 듯하다.
▲대학재학 중이었던 1963년 전국 TV극 경연대회 수상과 함께 1965년도에 KBS 공채로 들어가 '실화극장' 출연을 통해 소위 '인기스타'가 됐다. 이후로 1969년 말 MBC 개국과 함께 자리를 옮긴 이후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흔히 연극부터 시작해온 배우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탤런트'로 활동하면서 다른 연기장르에 눈을 돌릴 시간이 부족했다.
물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연극이나 영화 등에도 출연했지만 호흡이 긴 무대 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탓에 자주 나서지는 않았다.
지금에 있어서는 그 부분이 조금 후회스럽긴 하다. 그에 따라 '장수상회' 출연은 첫 소극장 연기 기회이자 또 다른 활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탤런트 겸 영화배우를 넘어 대중에게 익숙한 예능인까지 다양한 모습이 있다. 어느 형태로 비쳐지기를 바라는지.
▲탤런트라는 말 자체가 연기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재능'을 지닌 인물을 일컫는다. 처음 시작을 TV 탤런트로 해서기도 하지만 배우로서 이력을 넘어 예능에도 통할 수 있는 정감이 있는 것, 그 자체가 탤런트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탤런트'로 불리며 연기부터 예능까지 다양한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즐거운 행보를 해나가고 싶다.
-56년 연기 인생 소회를 말하자면.
▲(웃음) 그런 이야기는 10년 뒤쯤에 하고 싶다. 아직은 멀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 직업 자체가 지루함 없이 매번 새로운 '할만한 직업'이다. 10년 뒤에는 다른 답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뭐라 정의 내리고 싶지 않다.
-앞으로의 계획과 각오.
▲제 모습을 자연스럽게 비출 수 있는 예능과 함께 따뜻함을 줄 수 있는 배역과 작품을 만나 연기를 또 하고 싶다. 공중파부터 종편까지 다양하게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도 무게감을 잡고 있는 좋은 드라마들이 제작될 것을 믿고 있고, 그에 함께하고 싶다.
모두가 힘든 시기, 힘을 줄 수 있는 탤런트·배우로서 그 소임을 다하고 싶다.
박동선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dspark@rpm9.com